"학교·학생·학부모 공동 참여 민주적 운영체계 필요"
(진주·창원=연합뉴스) 황봉규 기자 = 최근 기숙형 고등학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선호도가 높아지는 추세지만 경남 진주 모 고교 기숙사에서 학생이 숨진 사고에서 보듯이 기숙사가 학교폭력의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15일 경남도교육청 등에 따르면 지난 11일 기숙사에서 학생이 숨진 사고가 발생한 진주 모 고교는 이런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사례다.
이 학교는 전체 402명의 재학생 가운데 98명이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기숙사 학생은 오전 8시20분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학교생활을 제외하면 기숙사에서 나머지 시간을 보낸다.
오전 6시30분에 일어나 아침청소, 세면, 점호·운동, 식사를 하고 등교하고, 하교 이후에는 4교시의 자율학습과 저녁 점호를 마치고 자정에 취침하는 빡빡한 일과에 매여 있다.
이런 일과 중에 교사는 자율학습과 점호 등을 관리감독하지만 전체 학생의 기숙사 생활을 일일이 챙겨보기 어렵다.
매일 기숙사에 머무는 교사가 사감과 부사감 등 2명에 불과해 자정 이후 4명이 한방을 쓰는 26개 기숙사 방에서 일어나는 일 모두를 지도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4인 1실의 방 배정에서도 일부 방은 상급생과 하급생을 같이 사용하도록 해 하급생의 불편이나 폭력에 노출될 우려도 제기됐다.
한 학부모는 "이번 사건이 기숙사에서 밤 11시 반 넘어서 일어났는데 불안하다"며 "하급생인 우리 애가 상급생과 같이 방을 배정받아 더 불안해 전학신청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더욱이 이 학교는 지난 3월 개학 이후 학교폭력을 막기 위한 '2014학년도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계획'을 세우면서도 기숙사 내 폭력 예방이나 순찰 등의 내용은 마련하지 않았다.
이 계획에는 학생들의 기본생활 습관을 강화하려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때 순회지도를 하는 학교폭력 순찰조 편성과 시간 계획까지 세웠지만 기숙사는 뺐다.
학교 자체 기숙사 운영규정에 교사들로 구성된 기숙사운영위원회가 생활지도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구체적 지침은 포함하지 않았다.
오히려 학생들로 구성된 기숙사자치회에서 학생들의 기율을 잡는 것을 방조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유족 측은 숨진 학생의 친구들이 '기숙사 선배들이 후배를 때리는 것을 눈감아 달라'는 말을 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봉사활동 성격의 자치회가 학교 폭력을 유발한 셈이다.
지난 11일 발생한 학생 사망 사고의 가해학생도 기숙사 자치위원이었다.
이에 대해 이 학교 측은 '야간학교'역할을 하는 기숙사는 밀폐된 공간이어서 학생부 교사들이 주로 맡아 폭력 예방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고 매일 사감과 부사감 교사가 숙식을 함께하며 학생을 지도한다고 밝혔다.
학교 측 한 관계자는 "남학생 방과 여학생 방을 철저히 구분하고 자정 이후 학생 생활 지도를 위한 순찰도 계속해왔다"면서 "학기초 방을 배정하다가 어중간하게 1~2명이 선배 방에 가는 경우가 있지만 양측의 동의를 구한다"고 말했다.
경남교육청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도내 전체 86개 학교 기숙사를 실태조사한다.
도교육청 학생안전과의 담당 장학사는 "이달 말까지 하루에 4~5개 기숙사를 조사해 규정에 어긋나거나 학생지도가 부적절하면 개선하도록 지도하고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감사 요청, 담당자 징계 등 행정조치를 시행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교육청은 이번에 기숙사 시설현황은 물론 사감 근무형태, 학교폭력 예방교육 이행 여부, 기숙사 내 학교폭력 확인 면담 등 25개 정도의 항목을 조사한다.
학부모들은 학교 기숙사가 없어지지 않는 한 학교폭력은 반복될 소지가 크기 때문에 제도적인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장윤영 참교육학부모회 거제지회장은 "기숙형 학교는 문제점이 많아 이번 사고도 일어났다"며 "학교가 일방적으로 통제하기보다 학교, 학생, 학부모들이 조직을 구성해 서로 의견을 내고 거기에서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운영을 한다면 좀 더 성숙한 기숙학교의 문화가 형성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4/15 14:13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