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백설공주의 마지막 키스'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림형제의 동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토대로 했다. 나온 지 200년이나 지난 해묵은 이야기건만 영화는 익숙함이 주는 친근함과 그 익숙함을 비트는 새로움이 공존한다.
스페인의 고풍스러운 건물과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 가벼운 공기가 흑백 필름 속에 오롯이 담겼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날아온 이 뜨거운 비극은 게다가 무성영화다.
세비야의 전설적인 투우사 아버지와 유명 플라밍고 무용수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카르멘(마가레나 가르시아). 풍요로운 집안의 공주로 태어날 듯했던 그녀의 운명은 출생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진다.
엄마는 난산으로 숨지고, 아버지 안토니오(다니엘 히메네즈 카초)는 투우 도중 크게 다쳐 사지를 움직이지 못한다. 아내의 사망 소식에 안토니오는 갓 태어난 카르멘을 외면한다.
그 사이 안토니오를 간호하던 엔카르나(마리벨 베르두)는 아버지의 마음을 훔쳐 대저택의 안주인 자리를 꿰차고,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카르멘은 할머니와 함께 살아간다.
그러나 할머니의 돌연사로 카르멘은 계모에게 인도되고, 그녀는 마치 대저택의 하녀처럼 온갖 잡일을 하면서 의붓어머니의 핍박을 받는다.
무성영화지만 익숙한 이야기 덕택에 오히려 집중해서 영화를 볼 수 있다. 화려한 풍경과 조명을 흑백에 갈무리한 화면은 근사한 사진작품 같아 영화의 품격을 끌어올린다. 적절한 클로즈업과 로우앵글은 고전적인 영화 문법에 충실하게 따라 촬영했으며 구슬프다가 밝고 화사하게 변하는 음악은 카르멘의 천변만화하는 정서를 담아낸다.
흑백 화보집을 보는 것처럼 뛰어난 미장센(화면 구성)이 많지만, 특히나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다. 플라밍고가 흐르는 가운데 꼬마 카르멘이 춤을 추며 등장하는 첫 장면이다. 춤 동작과 음악의 연결이 유기적으로 착착 들어맞아 영화라는 예술 장르가 전해주는 희열을 맛볼 수 있다.
투우사로 성장한 카르멘이 거대한 황소와 맞닥뜨리는 장면은 그녀 아버지의 비극적 사고와 포개지며 긴장감을 자아낸다. 해피엔딩으로 끝맺는 원작과는 달리, 비극으로 급변하는 마지막 장면은 카타르시스마저 전해준다.
낯선 스페인 배우 마가레나 가르시아의 순진무구한 연기와 못된 계모를 연기한 마리벨 베르두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가르시아는 고야상 여우주연상, 스페인 배우조합상 등을 받았다.
'토레몰리노스 73'(2003)으로 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은 파블로 베르헤르 감독이 메가폰을 들었다. 산세바스티안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비롯해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주요 상을 받았다.
5월1일 개봉. 12세이상관람가. 상영시간 104분.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4/14 07:3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