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서 '엘리트 이미지' 벗고 친근한 '허당 아빠'로 인기
(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배우 장현성은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모르고 있던 그는 "아, 그러네요. 디너쇼라도 할까요?"라고 웃으며 되묻는다.
당연히 20년 동안 몇 편의 작품에 출연했는지도 잘 모른다. 최근 출연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작가가 뽑아준 목록을 보니 A4 용지 4장쯤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장현성은 1994년 극단 학전에 입단해 창단 기념작이었던 연극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했고, 2004년 김수현 작가의 '부모님 전상서'에서 과묵하고 똑똑한 장남 역으로 대중에게 얼굴과 이름을 알렸다.
그 이후로는 주로 날카롭거나 혹은 예민하거나, 지적인 이미지로 엘리트 전문직 역을 해왔다. 지난해 드라마 '결혼의 여신'에서 맡았던 대책 없이 속물적이고 뻔뻔한 바람둥이 앵커 노승수 역이 그로서는 망가짐에 대한 첫 도전이었다.
현재 방영 중인 SBS 드라마 '쓰리데이즈'에서 경호실장 함봉수 역을 맡은 그는 대통령 저격을 시도했다가 죽음을 맞으며 초반에 퇴장했다.
최근 만난 그는 "처음부터 분량이 많지 않은 걸 알았지만, 남자로서 몸쓰는 역할이 욕심나기도 했고, 철저한 국가관이나 충정을 가진 무관 역할을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KBS 육아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는 똑똑하고 귀여운 두 아들과 함께 출연해 패션 감각은 없지만 10년 넘게 같은 옷을 입는 소박함과 목이버섯으로 미역국을 끓이는 어수룩함으로 '아들 잘 키운 편안한 동네 아저씨'의 친근한 이미지를 더했다.
그는 "남자 열 명 중 여덟 명은 목이버섯을 모를 것"이라고 강하게 항변하더니 이내 "배우 아닌 장현성은 완전 헐렁헐렁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가 싫지만은 않은 듯했다.
"길에서 '아버님!'이라고 부르며 아는 척을 하는 여중생들이 있다"며 그런 반응이 "재밌다"고 한다.
배우로서 사생활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아직 어린 아이들까지 알려지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터. 더구나 앞서 MBC에서 먼저 선보인 육아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에 출연하는 자녀에 대해 악성 댓글이 쏟아지고 안티카페가 생긴 전례까지 있었다.
그는 "자라는 아이들이 전파를 통해 전국 방방곡곡의 모든 사람한테 노출되는 게 위험한 부분은 틀림없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다행히 걱정했던 일은 없고,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이랑 놀면서 다른 건 다 잘하는 데 사진 찍어주는 걸 잘 못해요. 필름을 사진관에 맡기는 수고는 할 수 있었는데 디지털로 바뀌고 나서는 그게 저한테는 더 복잡한 일이거든요. 그래서 어렸을 때 사진은 좀 있는데 요즘 사진이 없어서, 그게 아쉬웠어요. 아이들에게는 삼 주에 한 번 아빠와 모험을 떠나는 경험을 하고 그게 나중에도 추억할 수 있는 사진첩 하나로 남는 거잖아요. 그게 좋을 것 같았어요."
큰아들 준우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변한 건 다행스럽고도 좋은 일이다.
"준우가 꽤 괜찮은 어린이인데 자신감이 없었어요. 장남들이 대부분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어른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고 동생에게 본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했어요. 잘하는 것만 하고, 자신이 없으면 안 하고. 그런데 그런 게 많이 없어졌어요."
연출 전공으로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했지만 그건 '공인된 실업자'에 불과했고, 생활고 때문에 월급 준다는 학전 오디션을 본 것이 배우 인생의 시작이다. 처음 품었던 연출의 꿈은 "나이가 들고 통장 잔고가 쌓이면 배우로 출연했던 작품을 연출해 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새로 시작할 영화를 준비하는 그는 "늘 지금 하는 작품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식상한 질문이지만 20주년을 기념할 겸 '배우'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휴대전화를 뒤적여 메모를 찾아 읽어준 답은 '저 위에 누군가 날 좋아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였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4/11 07:3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