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첫 단초는 아버지를 허무하게 떠나 보낸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아버지의 이메일'을 연출한 홍재희 감독의 말에는 어떤 결기 같은 게 느껴진다. 영화는 에둘러 가지도, 꾸미지도 않는다. 홍 감독 가족과 지인들의 솔직한 인터뷰를 통해 한 가족이 겪었던 질곡의 세월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솔직함이 전해주는 힘이 이 영화가 가진 총재산이다. 그러나 진솔한 고백은 분명히 관객들의 가슴에 송곳처럼 파고들 만한 강력한 무기다. 영화는 작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정든 황해도를 등지고 열다섯 나이에 남한에 도착한 아버지. 맨주먹으로 반드시 성공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사기를 당한다. 어머니와 결혼하고 나서 돈을 벌러 베트남에도 가고, 사우디아라비아에도 다녀오지만 큰돈을 벌진 못한다. 이민을 떠나려고도 하지만 연좌제 때문에 그마저도 어려워진다. 아버지는 점점 술에 의지하고, 가족들은 점점 그와 멀어지기 시작한다.
영화는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 뉴스 클립과 가족 인터뷰, 전문 배우와 함께한 재연 등으로 이뤄졌다. 감독은 아버지가 죽기 전에 보낸 43통의 이메일을 토대로 그의 불행했던 인생과 엄혹했던 시대를 녹여서 전해준다.
돈을 벌어 부자가 되겠다며 베트남과 사우디를 전전했던 아버지의 꿈, 희망이 변색하면서 벌어졌던 잦은 음주와 가정 폭력, 이로 인한 자식들의 공포와 몸부림이 이어진다.
특히 지긋지긋한 아버지를 떠나 미국에 안착한 홍 감독 언니를 보여주는 장면은 매우 솔직해 당혹스러울 정도다. 죽은 아버지와의 화해를 위해 둘째인 홍 감독이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지만, 홍 감독의 언니가 보여주는 차가운 반응은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깨닫게 해준다.
한 가족의 내밀한 가정사 속에 담긴 드라마의 힘이 '픽션'의 그것보다 훨씬 강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증명한다. 주변에 친구 하나 없이 오로지 술과 벗하면 살아온 아버지의 삶에 분노하다가도, 자식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으려고 하수도에 떨어진 틀니를 줍고자 오물이 뒤범벅된 하수도로 들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슬픈 정서를 건드린다.
홍재희 감독은 연출의 변에서 "아버지를 성찰하는 이 사적 다큐멘터리가 우리 가족 모두를, 우리 가족의 과거를 따뜻하게 치유하는 디딤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4월24일 개봉. 12세이상관람가. 상영시간 90분.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4/09 10:35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