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집 '폴 투 플라이' 26일 발표…"故노무현 전 대통령 생각하며 부른 곡도"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스스로 "50이 다 된 나이"라고 했지만 이승환의 키덜트(Kid+Adult) 같은 동안 외모는 여전했다. 반면 그의 언변은 변함없이 선이 굵고 거침 없었다.
최근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11집 '폴 투 플라이'(Fall to fly) 발매 간담회에서도 그랬다.
"앨범 제목을 풀이하면 '비상을 위한 추락'이죠. 1997년부터 내리막길을 걸은 저의 세월과 비슷해요. 바닥을 치면 비상할 일만 남았으니 오히려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은 거죠."
1989년 데뷔해 25주년을 맞은 데 대해선 "초반에 각광받을 실력이 아닌데 뒷걸음질치다 쥐를 잡은 격이니 행운아"라고, '어린 왕자'란 별명은 "이미 후배들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지 오래"라고 시원하게 웃었다.
대부분의 중견 가수들이 나이 이야기에 예민한데 반해 "팬들이 '공연의 신'(神) 대신 '공연의 쉰'(50)이라더라", "한 사이트에서는 퇴물 가수 분위기더라", "안경점에 갔더니 다초점 렌즈를 쓰라더라" 등 자학 섞인 유머도 쉴 새 없이 던졌다. 회사 직원들은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그의 말에 걱정하는 눈치였다.
솔직한 성격인지라 가볍게 툭툭 내던지듯 말했지만 그는 이번 11집에 물량 공세를 퍼부어 사활을 건 느낌이다.
작업한 곡이 20여 곡에 달해 전(前)·후(後) 두 장의 앨범으로 쪼개 낸다. 녹음 시간만 3년간 1천820시간이 소요됐고 미국 로스앤젤레스 헨슨 스튜디오와 내시빌 오션웨이 스튜디오를 오가며 녹음해 비용만 3억8천만 원이 들었다. '클래스를 완성하는 1%의 차이'를 위해 세계적인 연주자를 참여시키고 뮤직비디오도 첫 앨범 수록곡 10곡 중 5편이나 제작한다.
"잘되고 싶어서 엄청나게 물량 공세를 했어요. 하하. 사실 10집이 2010년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한 발걸음을 옮겼을 때 다신 앨범을 내선 안 될 것 같았죠. 그런데 운명적으로 음악 하는 사람이니 뭔가가 꿈틀대며 좀이 쑤셨어요. '추억 팔이'도 좋지만 늘 새로운 걸 하고 싶어하고, 사람들이 옛 노래만 알면 스스로 비참할 것 같아 다시 앨범을 만들었죠."
지난 25년간 록과 발라드를 오가며 탄탄한 음악성을 구축했기에 새 앨범은 어느 쪽에 무게 중심을 둘지 관심이 모아졌다. 타이틀곡 '너에게만 반응해' 등 수록곡들은 대중성을 흠뻑 입어 반전이다.
그는 "무조건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결연한 의지로 대중친화적인 음악을 들려줘야 했다"며 "나의 1, 2집 때 음악 선호도가 높아 그때처럼 편안하고 풋풋하게 다가가려 했다. 그러나 완성도는 양보할 수 없어 곡 당 두세 번씩 믹싱을 했고 작업 후 폐기 처분한 곡도 있어 사운드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듣기 편하지만, 완성도가 높은 앨범"이라고 강조했다.
'너에게만 반응해'에는 미국 뉴욕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인 가수 이소은의 맑은 음색이 더해져 봄날에 어울리는 밝은 곡으로 완성됐다.
그는 "사랑의 아픈 흔적이 지워져서 이젠 기억조차 안 나 밝은 가사를 쓰는 게 더 편하다"며 "사회적으로도 사람들의 피로도가 높으니 밝은 곡으로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수록곡들은 한곡 한곡 호기심을 자극하며 필청(必聽)해야 할 '거리'를 제공한다.
도종환 시인이 가사를 쓴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생각하며 녹음했다고 한다. 이 곡에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동원됐다.
"봉화마을 음악회에 갔을 때 도종환 시인께 가사를 부탁했어요. 노래에 작사를 한 건 처음이시래요. 도종환 시인의 의도와 달리 제가 가사를 음미해보니 그분(노 전 대통령)이 떠올랐어요. 그분에 대한 이야기로 노래해도 되느냐고 시인께 여쭸더니 노래하는 사람의 몫이라고 하더군요. 그분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아 노래했어요."
정치색을 우려하자 "부담되지만, 일종의 표현의 자유 같은 것"이라며 "예술하는 사람이 옳고 그른 걸 얘기하는 건 교만이지만 좋고 나쁜 것에 대한 발현"이라고 강조했다.
수록곡 '소리'(Sorry)에 목소리를 보탠 배우 이보영은 15분 만에 녹음을 끝냈다고, 네덜란드 출신 뮤지션 바우터 하멜은 자신이 그의 공연 게스트로 서며 인연을 맺어 '스타 워즈'(Star Wars)에 피처링 참여했다고 에피소드를 곁들였다.
대부분 대중이 이승환에게 바라는 곡을 담았지만 '라이프스 소 아이라닉'(Life's so ironic)에서 랩을 하는 등의 새로운 시도로 액센트를 줬다. 그는 "11집의 첫 앨범이 듣기 편한 음악으로 인지도를 높이는 작업이라면 향후 두 번째 앨범은 더 실험적인 음악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접점을 찾아 청자들과의 간극을 메운 그는 지난 시간의 반성에도 주저하지 않았다.
"대중의 사랑으로 사는 가수가 제 것만 주장한 건 교만했던 거죠. 발라드든 록이든 결국 제 것이니까요. 10집이 음원차트 100위 안에서 찾아볼 수 없어 벼랑 끝에 서보니 알겠더라고요. 1년 넘게 준비한 앨범이 10일 만에 끝났다고 생각하니 불행하고 안타까웠어요. 그때 강아지를 사서 위로받았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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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사에 소속되지 않고 1집 때부터 직접 앨범을 제작하며 걸어온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돌아봤다. 몇몇 개인적인 분쟁, 인기의 부침도 있었으니 나름 산전수전을 겪었다고 한다. 쉬운 삶이 아니었던 데는 그의 완벽주의도 한몫했다.
"어린 시절 제 꿈은 키가 큰 사람, 40대에는 정의롭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었어요. 보편적인 정의 안에서 살자는 것인데 그래서 더 힘들어지고 있어요. 매일 아침 신문을 볼 때마다 분개하고 분노합니다."
그럼에도 도태되지 않고 음악인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건 '젊은 마음' 덕이라고 했다. 어른처럼 군림하거나 권위적이지 않으려고 젊은 후배들과도 열심히 교류한다는 것. 지난해 10월에는 밴드 톡식의 김슬옹(22)과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그는 "음악인의 미덕이 젊은 감각인데 꽤 잘 유지해왔다"며 "어린 친구들의 귀여운 자극이 큰 힘이 된다. 예전엔 방송에서 가사를 곧잘 잊어버렸는데 2년 전부터 노래도 잘 부르고, 곡도 잘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창작 의욕이 샘솟으니 들려주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심지어 가수 이적이 한 '방송의 적' 같은 B급 정서의 예능도 해보고 싶다"고 욕심 냈다.
꼭 이루고픈 바람이 있다면 보컬이 악기 소리를 제압하는 앨범을 내거나 공연을 해보는 것.
"보컬리스트로 인정받고 싶은 면이 있어요. 제 목소리가 콧소리, 신음으로 폄하 당한 적이 있는데 그런 소리 안낸지 오래됐는데도 따라다녀요. 하하. 선입견이 불식되길 바라요."
공연과 방송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그는 오는 28~29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내 우리금융아트홀에서 '이승환 옹 특별 회고전+11'이란 제목으로 콘서트를 연다. 이어 성남, 수원 등지를 돌며 전국투어를 진행한다.
그가 또 한 번 쓴소리를 한다.
"요즘 지방 공연 상황이 안 좋아요.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정책이) 서울 중심으로 돌아가 지방 문화가 안 좋아졌거든요. 하나의 공연으로 여러 군데를 돌아야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는데 지방 공연업계가 어려우니 점점 단발성으로 가는 경향이 있어요."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3/26 08:0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