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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 '위키드' 관람한 뮤지컬 거장 스티븐 슈왈츠 (설앤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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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드' 작곡가의 첫 내한…"세계 여러 버전 중 한국어 '위키드' 최상"
거장의 조언은 "진실로 사랑하는 이야기를 하세요"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뮤지컬 '위키드'를 작곡한 세계 뮤지컬계 거장 작곡가 스티븐 슈왈츠(66)가 '위키드'의 라이선스 공연을 제작한 뮤지컬 제작사 설앤컴퍼니의 초청으로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26세 나이에 작곡한 뮤지컬 '피핀', '갓스펠' 등이 연이어 히트하면서 천재 작곡가로 주목받기 시작한 그는 영화계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 디즈니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 '노트르담의 꼽추', '이집트의 왕자' 등에서 연속 홈런을 날렸다. 지금까지 3개의 아카데미상과 4개의 그래미상을 받았다.
작년 11월부터 한국어 버전으로 초연 중인 '위키드'를 관람한 그는 24일 공연장 근처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 배우들과 프로덕션 수준에 큰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 22~23일 캐스팅 별로 모든 공연을 관람하고, 배우 및 제작진과 작품에 관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보냈다.
"'위키드'는 현재 세계 다양한 언어로 공연 중이지만, 한국어 버전은 그중에서도 최상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언어만 다를 뿐 지금 당장 뉴욕 브로드웨이에 가도 한국어 버전과 완전히 같은 공연을 보게 되실 겁니다. 배우들의 수준은 물론 음향과 앙상블, 한국 관객들의 호응과 이해도까지 모든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한국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평을 묻는 말에는 곤혹스러워했다. "모든 배우가 뛰어나고, 각자 개성이 있어 어떤 평가를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초록 마녀 '엘파바' 역을 맡은 옥주현 씨는 강한 감정이나 분노를 안으로 응축하는 연기가 매력적이었고, 박혜나 씨는 그런 감정을 뿜어내는 기운이 좋았습니다. 또 하얀 마녀 '글린다' 역의 정선아 씨는 극의 재밌는 부분을 잘 살리는 재능이 뛰어났고, 김보경 씨는 관객에게 진실하고 현실적으로 다가가는 장점이 있더군요. '위키드'는 배우들이 자신의 성격과 인생관을 투영시킬 수 있는 공간이 많은 작품이고, 그게 '위키드'가 갖는 힘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는 몇몇 부분에 대한 수정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한국 관객은 미국 관객에 비해 원작 동화인 '오즈의 마법사'가 덜 친숙하므로, 몇몇 보완 장치를 추가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위키드'는 태풍에 휩쓸려온 캔자스의 소녀 도로시가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나서는 여정을 그린 프랭크 바움의 동화 '오즈의 마법사'의 프리퀄(소설·영화 등에서 다룬 스토리 이전에 일어난 일을 다룬 속편)이다.
그는 수많은 히트 뮤지컬 음악, 영화 음악을 탄생시켜 왔지만, 그중에서도 '위키드'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힐 만하다. 10년 넘게 브로드웨이에서 최고 흥행작 지위를 지키고 있는 이 작품의 중심에는 그가 만든 '중력을 벗어나'(Defying Gravity), '파퓰러'(Popular), '널 만났기에'(For Good) 등과 아름다운 노래가 자리 잡고 있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곡을 꼽아달란 말에 "어딜 가도 듣는 질문이지만, 절대 답하지 않는 질문이기도 하다"며 웃었다. "관객들이 노래에서 자유로운 감정을 느끼길 바라며, 제 대답으로 인해 어떤 노래에 대한 장벽 같은 걸 만들고 싶지 않다"고 부연했다.
대신 그는 '위키드' 작품 자체가 가진 매력을 설명하는 데 긴 시간을 할애했다.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소설 '위키드:사악한 서쪽 마녀의 삶과 시간들'을 처음 접하자마자 뮤지컬로 만들고 싶어 백방으로 뛰었죠. 살아있는 캐릭터, 이들이 갖는 관계, 작품 안의 철학 등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위키드'는 사악한 초록 마녀 '엘파바'와 선한 하얀 마녀 '글린다'의 이야기 안에 '보이고 들리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죠. 실체도 없는 공공의 적을 만들어 권력을 획득해온 사례를 우린 역사 속에서 너무도 많이 경험해왔습니다. 현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동성애자 탄압, 미국의 이라크 전쟁 등 꼽을 만한 사례는 너무도 많습니다. 꼬마 아이들도 즐길 수 있는 동화적인 측면도 갖고 있지만,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함의를 많이 담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뮤지컬 거장은 한국 창작진에 대한 응원과 격려도 있지 않았다. 그는 "열정과 사랑을 쏟아부을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내라"는 조언을 우리 창작진에게 전했다.
"한국에서 한국만의 뮤지컬을 만들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많이 응원해주고 싶습니다. 뮤지컬을 함께 고민하는 작곡가로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 진실하게 사랑하는 이야기에 관해 작업한다면 관객들도 그 진정성을 분명히 느낀다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한국 창작진이 만든 한국 창작 뮤지컬을 꼭 보고 싶네요."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3/24 14:04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