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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인생> 변진섭 "가수는 내 인생의 베스트 운명이죠"

posted Mar 2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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쉘부르 무명 통기타 가수에서 밀리언셀러 '발라드의 왕자'로

"스타 꿈꾼 적 없어 광고 출연도 거절…26년간 쌓은 음악 자부심 강해"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발라드의 왕자', '둘리', '섭섭이'….

 

이런 별명만 거론해도 온 국민이 단 한 사람을 꼽을 수 있다. 바로 변진섭(48)이다. 그는 1980년대 말과 1990년대를 관통하며 가요계 르네상스 시대를 주름잡은 밀리언셀러다. 이전부터 발라드란 장르는 있었지만 '발라드 가수'란 용어는 변진섭부터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발라드 족보를 따지면 맏형인 셈이다.

 

최근 동부이촌동 서울스튜디오에서 새 싱글을 녹음 중인 변진섭을 만났다. 이곳은 그에게 집같이 편한 곳이다.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1집과 2집을 비롯해 12장의 앨범 중 10장가량을 이곳에서 녹음했다.

 

최근 tvN의 새 음악 토크쇼 '근대가요사 방자전'을 통해 오랜만에 방송 활동에 나선 그는 "공연을 꾸준히 했는데 TV 출연을 안 하니 사람들이 '요즘 뭐하냐'고 묻더라"고 웃었다.

 

갑작스러운 예능 프로그램 출연에 대해 "나와 맞는 방송이 몇 개 없고 내가 원한다고 나갈 수 있는 게 아니다"며 "이 프로그램은 내가 좋아하는 주병진 형이 끌고 가는 구도가 좋았고 김완선, 정원관 등 옛 동료와 함께 하니 마음에 들었다. 이걸로 예능에 발을 들이겠다는 게 아니라 여기선 내가 양념 역할을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변진섭은 경희대 농학과 재학 시절 캠퍼스 그룹인 '탈무드' 5기 멤버로 1987년 MBC '신인가요제'에서 참여하며 가요계에 데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고 3때부터 MBC 라디오 PD 겸 인기 DJ였던 고(故) 이종환이 이끄는 음악감상실 쉘부르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했다. 이곳 무대에서 활약하던 중 신인가요제에도 나갔다. 부모는 아들이 변호사나 판사가 되길 원했지만 그는 형이 듣던 비지스의 LP를 접한 뒤 퀸, 마이클 잭슨, 레드 제플린 등의 음악에 '휙' 빠져들었다. 이때부터 직접 기타를 치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고 2때 음악에 중독되면서 음악 환자가 됐죠. 고 1때까지 명문대에 갈 실력이었는데 친구들과 합주실 빌려 연습하니 성적이 뚝뚝 떨어졌어요. 가수로 성공하기 전까지 아버지가 있으면 집에 안 들어갔죠. 하지만 어머니는 이미 못 말릴 상황인 걸 눈치 채셨어요."

 

그는 무명의 학생 신분이지만 쉘부르의 골든 타임에 노래하면서 '재목'으로 이름나기 시작했다. 가요 관계자들과 가수들이 그의 노래를 들으러 올 정도였다. 밤이 되면 그는 이태원의 라이브 클럽에서도 노래했다. 대학 수업에 지장이 있을 정도였다.

 

변진섭을 스카우트한 건 한국연예제작자협회 전 회장으로 당시 쌍용기획을 운영하던 엄용섭 대표였다.

 

"그땐 엄 대표님 사정도 어려워 제 앨범을 내는데 심사숙고하셨죠. 지금 팬엔터테인먼트 박동아 회장님이 당시 '형, 진섭이 안 할 거면 내가 해보겠다'고 관심을 보이자 엄 대표님이 고심 끝에 집을 담보로 제 앨범을 냈어요. 지금의 신사동 가로수길에 쌍용기획이 있었는데 제 앨범이 뜨고 건물을 지으셨죠. 하하. 대표님이 모험을 걸고 한 마지막 올인이었는데 다행이었죠."

 

 

3년간 무명으로 노래한 끝에 1988년 이곳에서 낸 1집 '홀로된다는 것'에 단박에 반응이 왔다. 타이틀곡 '홀로된다는 것'은 KBS '가요 톱 10'에서 5주 연속 1위를 했고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 '새들처럼', '너무 늦었잖아요' 등의 수록곡들도 잇달아 사랑받았다. 2~3개월 만에 그는 스타가 됐다.

 

이어 1989년 발표한 2집 '너에게로 또다시'로 더 큰 대박이 터졌다. 이 앨범의 '희망사항', '숙녀에게', '로라' 등이 함께 히트했다. 데뷔 당시 '골든디스크' 신인상을 거머쥐었던 그는 이듬해 이 앨범으로 대상을 차지했다.

 

그는 "1집은 180만 장, 2집은 240만 장까지 카운트를 한 뒤 3집 때부터 독립해서 그 이후로 세보지 않았다"며 "2집은 1990년대만 해도 300만 장 넘게 팔린 것 같다"고 말했다.

 

변진섭 시대가 열리자 광고와 방송 출연 요청이 그야말로 쏟아졌다. 그러나 "애초부터 스타가 되기보다 '다운타운의 제왕'이 되고 싶었다"는 그는 "앨범을 내고 노래하면서 내가 원하는 사업을 하며 이중생활을 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그랬기에 무더기로 쏟아지는 광고와 방송 출연도 대부분 거절했다. 그는 당시 이문세 등의 선배들과 어울렸는데 뮤지션은 상업적인 광고를 하면 생명이 끝난다는 '개똥철학'과 자존심이 세던 시절이라고 웃었다.

 

"한 달에 앨범 판매 수익이 1억 원씩 들어오는 걸로 충분했어요. 상업적인 게 싫어 광고는 '크라운제과'와 '대우전자' 딱 두 개만 했죠. 광고 콘티가 마음에 안 들어 트러블이 생기니 제가 할 일이 아니라 여겨 그 뒤로 오는 제안도 모두 거절했어요. 방송 출연도 많이 한 것처럼 느끼겠지만 2집 때도 '희망사항'이 KBS, MBC 가요 프로그램에서 수 주째 1위를 하니 안 나갈 수가 없었죠."

 

이즈음 한 영화제작사는 '희망사항'이란 영화를 기획해 그에게 주연을 제안했다. 가수만 하고 싶어 거절하자 제작사는 시나리오를 바꾸고 최수종, 하희라를 주연으로 캐스팅해 '너에게로 또다시'(1990)란 제목으로 개봉했다.

 

그는 "조연 제안까지 난색을 보이니 캐스팅한 배우가 신인인 김민종 씨였다"며 "결국 난 가수 역으로 이 영화에 특별 출연했다"고 말했다.

 

치솟은 인기에 금천구 독산동 집 앞에는 지방에서 온 소녀 팬 20~30명이 상주했다. 그의 어머니는 기다리는 팬들이 안쓰러워 동네 여관에서 재우곤 했다.

 

그는 "당시 미림여중 앞에 3층짜리 우리 집이 있었다"며 "어느 날 미림여중 교감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와 '학생들이 변진섭 씨를 보겠다고 2층에서 고개를 내밀어 위험하고 면학 분위기를 흐린다'고 했다. 집 앞에 늘 팬들이 북적거리니 결국 독산동에서 쫓겨났다"고 웃었다.

 

3집 '어떤 이별'(1991), 4집 '너와 함께 있는 이유'(1991), 5집 '그대 내게 다시'(1992) 등 그의 인기는 수년간 탄탄했다.

 

변진섭과 호흡을 맞춘 대표적인 작곡가는 하광훈('홀로된다는 것', '너에게로 또다시' 등), 지근식('너무 늦었잖아요', '새들처럼' 등), 노영심('희망사항')이다. 그는 가장 아끼는 곡으로 1집의 '너무 늦었잖아요'를 꼽았다. 이 곡은 당시 홍콩 스타들이 대세일 때 장국영도 리메이크하고 싶어한 노래라고 한다.

 

"하광훈 씨는 현실주의자인 것 같으면서도 아티스트예요. 지근식 씨는 집시 스타일로 방랑 시인 같은 근성이 있고요. 두 분 모두 트렌드에 흔들리지 않는 거목들이었죠."

 

지금도 변진섭 하면 떠올리는 '희망사항'은 양날의 검 같은 곡이다. "날 국민 가수로 만들어준 노래이자 내 음악 색깔을 바꿔버린 노래"라고 했다.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 나오는 여자~'(희망사항)

그는 "노영심 씨가 나름 리서치를 하고 100% 완성한 곡"이라며 "이후 노영심 씨가 '희망사항 2'를 썼는데 '희망사항'이 너무 히트해 내 음악 이미지가 흔들리는 것 같아 결국 노영심 씨가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로 직접 발표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1999년 9집 '20B'을 발표하고 2000년 12살 연하의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수중 발레) 국가대표 출신인 이주영 씨와 결혼했다. 당시 '발라드의 왕자'와 '인어 공주'의 만남으로 화제였다.

 

"아내는 제 팬도 아니었고 제 노래도 잘 몰랐어요. 우연히 지인을 통해 사석에서 만났는데 처음엔 연락을 주고받으며 오빠 동생으로 지냈죠. 어느 날 밥을 한번 사주는데, 순진한 점에 끌려 결혼하면 이런 여자랑 하면 좋겠단 생각을 했죠. '매력적이다, 섹시하다'가 아니라 우리 엄마 스타일이었어요. 아내는 자상한 줄 알았는데 속았다고 합니다. 하하."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 둘은 부모의 재능을 물려받았다. 큰아들은 태권도로 전공을 정했고 둘째는 피아노를 치는데 절대 음감인 것 같다고 자랑한다.

 

가정을 꾸린 뒤 그는 5년간 앨범 공백기를 가졌다. 2004년 낸 10집 '히스토리'(He'story)는 하광훈과 3집 이후 14년 만에 다시 만나 작업했지만 예전 같은 반응은 아니었다.

 

"김범수의 '약속'을 듣고 당시 미국에 있는 하광훈 씨에게 연락했죠. 하광훈 씨도 우리 콤비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에 의욕을 갖고 작업했어요. 하지만 10집을 내고 홍보를 안 했죠. 둘 다 명반은 내버려두면 반응이 올 거란 믿음이 강했어요. 하하. 4년에 걸쳐 만들었으니 '개똥철학'이 도졌고 객기도 있었어요. 그런데 10집을 지금도 찾는 사람들이 있어요."

 

인기의 무상함을 느끼기 충분한 상황이었을 터. 그러나 그는 "난 처음부터 인기가 팍 올라갔을 때도 무덤덤했다. 눈물 한 번 흘린 적도 없었다. 스타가 인생의 목표가 아니었고 인기가 물거품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연이 흥행 면에서 예전 같지 않을 뿐 솔직히 세월의 흐름을 못 느껴요. 제가 둔한 건지 얼마 전과 지금의 트렌드가 달라진 정도로만 여기죠. 이미 1990년대에도 서태지와아이들이 등장해 나머지 장르가 바래지고 흐름을 바꿔놓았죠. 댄스 음악계만 장악한 게 아니라 가요계를 장악했으니까요. 제 팬들이 서태지와아이들의 앨범을 들어보라고 선물해줬을 정도죠. 이 모든 과정이 가요계의 생리입니다."

 

그는 방송 대신 공연에 주력해온 세월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공연만 하는 지금이 옛날보다 좋다"며 "꿈을 못 깨는 게 아니라 지난 26년간 쌓은 음악 이력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지 공연을 꾸준히 했지만 공연형 라이브 가수의 이미지가 구축되지 않은데 대한 아쉬움은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2000년대 초반 자신의 매니지먼트에 소홀했던 점은 실수였지만 이 또한 운명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그는 "오늘도 녹음하지만 욕심은 옛날과 다르다"며 "히트해 1위를 하는 게 아니라 '팬들이 좋다고 느껴야 할 텐데'란 마음이다. 음악의 길은 하나님이 내 인생에서 베스트로 작업해준 운명이다. 난 슬럼프도 없었고 나쁜 생각을 할 정도의 굴곡도 없었다. '왕년에 내가 가수왕이었는데'가 아니라 음악 자부심이 있고 팬이 있으니 행복하다. 되레 지금 더 겸손해지려 한다"고 덧붙였다.

 

 

 

mimi@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3/24 07: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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