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연합뉴스) 이재현 기자 = "아들을 데리고 있으니 살리려거든 2천만원을 송금해라."
강원 홍천에 사는 A(51·여)씨는 지난 11일 떠올리기도 싫은 끔찍한 경험을 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A씨의 휴대전화가 울린 것은 이날 오후 2시 17분께다.
춘천의 한 고등학교로 아들을 유학 보낸 A씨는 아들의 휴대전화로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지만, 목소리는 뜻밖에도 중년 남성이었다.
순간적으로 당황한 A씨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아들만은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이후 협박범은 욕설과 함께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얼마 안 돼 돈이 필요하다"며 송금 가능한 돈이 얼마인지를 집요하게 물었다.
"돈을 구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서 전화를 끊은 A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112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 시각 A씨의 아들은 학교에 무사히 있었다. 경찰의 도움으로 전화금융사기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지만, A씨의 놀란 가슴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같은 날 비슷한 시각. 평창군 평창읍에 사는 B씨도 '아들을 납치했다'는 협박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끊자마자 이상한 생각이 든 B씨는 112에 신고했다.
경찰로부터 학교에서 수업 중인 아들의 안전을 확인하고서야 B씨는 전화금융사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삼척시 교동에 사는 C씨도 고교 1년에 재학 중인 아들이 학교에 간 사이 "납치한 아들을 살리려거든 2천만원을 송금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당황한 C씨는 돈을 마련해 계좌 이체하려는 순간 112에 먼저 신고하자는 인척의 말을 듣고 경찰에 신고했다. C씨는 아들의 안전을 확인하고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이처럼 새 학기를 맞아 자녀 납치를 빙자해 학부모에게 몸값을 요구하는 전화금융사기가 또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 11일 하루 동안 강원지역에서만 11건이 신고됐다.
경찰은 발신번호까지 자녀의 휴대전화로 변조해 전화한 것으로 미뤄 유출된 개인정보를 전화금융사기 범죄 조직이 취득, 이를 범행에 활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심지어 자녀의 이름과 학교 명칭 등 구체적인 개인정보까지 들먹이며 사기에 악용하다 보니 학부모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허행일 강원지방경찰청 수사 2계장은 "유출된 개인정보가 전화금융사기에 그대로 악용되면서 한 단계 진보된 사기 범행이 만연하고 있다"며 "어떠한 경우든 요구하는 돈을 송금하지 말고 침착하게 112에 신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전화금융사기를 근본적으로 예방할 수 있도록 휴대전화의 발신번호 변조 방지법 등을 입법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강원도 내에서 발생한 전화금융사기는 모두 90건으로 11억7천만원의 피해가 났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3/12 15:4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