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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년 만에 국내 활동 재개하는 가수 계은숙
- 32년 만에 국내 활동 재개하는 가수 계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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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카의 여왕'서 32년 만에 국내활동 재개…한·일서 새 앨범
"고령 어머니가 한국서 노래하는 모습 보고 싶어했죠"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가수 계은숙(53)은 공연 전 단장에 한창이었다. 지난 8일 저녁 광진구 광장동 쉐라톤그랜드워커힐 호텔에서 일본 팬 500여 명을 위한 디너쇼를 준비 중이었다.
분장실에서 계은숙의 메이크업을 하던 남자 스태프가 "형, 아니 누나"라고 말을 바꿀 정도로 그의 성격은 가식 없이 호탕해 보였다. 바쁜 와중에도 집에서 싸온 김밥, 과일을 먹으라며 살갑게 기자를 챙겼다.
1980~90년대 일본에서 '엔카의 여왕'으로 군림한 계은숙이 32년 만에 국내 활동을 재개했다.
이달 말 국내에서 '주문', '꽃이 된 여자', '가지말아요' 등 신곡 3곡과 '기다리는 여심', '노래하며 춤추며', '나에겐 당신밖에' 등 과거 히트곡 3곡 등 총 6곡이 수록된 음반을 발표한다.
신곡을 일본어로 녹음해 4월 중순 일본에서도 출시한다.
단장을 마친 계은숙은 가슴에 화려한 장식이 수 놓인 주황색 드레스에 금색 구두를 신고 인터뷰 자리에 앉았다. 1977년 럭키 샴푸 광고 모델로 데뷔한 스타답게 고운 피부와 화사한 미소는 변함 없었다.
그는 1979년 발표한 '노래하며 춤추며'로 이듬해 MBC '10대 가수가요제'에서 신인상을 받으며 스타덤에 올랐지만 1982년 돌연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어 1985년 '오사카의 모정'으로 일본 가요계에 데뷔해 1988년~1994년 NHK '홍백가합전'에 7회 연속 출연했고 1990년에는 일본 레코드 대상인 '앨범 대상'을 받으며 '엔카의 여왕'으로 사랑 받았다.
그는 일본행에 대해 "여자로서 사랑에 실패했다"며 "외롭고 힘든 시련이었지만 이겨내니 뜨거운 가슴을 안고 노래하는 여자가 될 수 있었다"고 웃었다.
고국 무대에 오르는 의욕은 대단해 보였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기 위해 일본 활동 재개도 추진 중이며 앞으로 동남아시아 시장으로 무대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시 태어난 느낌이죠. 젊어지는 기분이고요. 제 고향이니까요. 국내 팬들과 라이브 무대에서 만나면 가슴이 뜨거워질 것 같아요. 지난해 처음 방송 무대에 섰을 때 눈물을 흘렸어요. 고국 팬들에게 정말 순수하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활동을 재개한 가장 큰 이유는 아흔 살 고령인 어머니였다. 그는 당뇨와 알츠하이머로 투병 중인 어머니에게 한국에서 다시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머니가 고령인데 한국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셨어요. 절 홀로 키우셨는데 시간을 되돌리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늦은 것 같아 죄송하죠. 이 땅의 어머니들은 모두 위대하신 것 같아요."
계은숙이 약 26년의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온 건 지난 2008년. 2007년 불미스런 일로 일본에서 재판을 받은 후 비자 연장이 거부되자 귀국해 5년 동안 칩거 생활을 했다. 그간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는 얘기도 흘러나왔지만 지난해 여름부터 활동 재개를 준비했다.
"지난 30여 년간 이렇게 쉬어본 적이 없다"는 그는 "어머니에게 못다 한 딸 노릇을 하고 싶어 평범한 시간을 보냈다. 또 국내 가요계도 세대가 바뀌어 공부가 필요해 나에게 충실한 시간을 보냈다. 바삐 가지 말고 이젠 좀 천천히 가고 싶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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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하는 계은숙
-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원조 한류 가수' 계은숙이 8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연합뉴스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2014.3.9 pdj6635@yna.co.kr
1980년대 일본에서 역시 큰 사랑을 받은 조용필이 지난해 19집으로 큰 사랑을 받는 모습을 지켜보며 기뻤다고도 했다.
그는 "조용필 오빠가 마치 회춘한 듯 청춘처럼 보였다"며 "노래에 인생을 표현하는 모습, 열심히 하는 모습이 내게도 용기를 줬고 마음속으로 무척 기뻤다. 응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새 앨범 작업에는 일본 유명 작곡가 나카무라 다이츠를 비롯해 작곡가 유해준, 작사가 이건우가 참여했다. 타이틀곡 '주문'은 성인 가요가 아닌 팝 발라드다.
그는 "한국 사람이 발라드를 잘 하지 않느냐"며 "어린 시절 마음의 열정도 있어 다른 장르의 노래를 부르는 게 힘들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의 K팝 가수들이 활동하기 훨씬 이전 물꼬를 튼 원조 한류 가수.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전 총리가 팬클럽 회원이었을 정도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
"그곳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으니 감사하죠. 오늘 공연에서 만나는 일본 팬들은 오랜 시간 함께 보내서인지 살가운 친구들 같아요. 같이 늙어가는 친구들이죠. 하하."
그는 "한류 열풍의 선구자란 표현은 사람들이 붙여준 타이틀일 뿐"이라며 "한국 사람은 특별한 열정이 있고 인간미가 있지 않나. 라이벌 의식보다 가슴으로 껴안으며 활동해야 한다"는 조언도 했다.
일본에서는 환희와 영광이 있었지만 수반되는 외로움과 시련도 있었다. 그는 이날 타지에서 가수로서, 여자로서 느낀 외로움도 털어놓았다.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시간이 없었고 다짐한 삶을 살 수 없는 어려움도 있었어요. 많이 웃기도, 울기도 했죠. 억지로 이기려고 자존심을 내세우며 발버둥도 쳤어요. 이 시간이 지나고서야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된 아쉬움이 있죠. 대서사시처럼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는 노래가 있었기에 이겨낼 수 있었어요."
그는 희로애락이 있던 자신의 가수 인생을 담은 자서전을 준비 중이다. 주제는 '휴먼'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출간하는 걸 목표로 며칠 뒤 작가 미팅을 한다.
그는 "사람이 사는 모습이 다 예쁘고 아름답지 않다"며 "사랑받는 사람으로서 부족함이 있던 내 모습에 상처받은 분들을 위해 기쁨, 슬픔, 아픔이 있던 옛 이야기를 모두 풀어낼 생각이다. 난 팬들의 사랑이 끊기지 않았기에 존재할 수 있었다. 내 이야기가 여전히 시련 속에서도 성취하기 위해 각기 다른 모습으로 뛰는 사람들에게 공감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저에게 노래는 인생입니다. 여전히 다시 태어나는 시간을 갖게 해줬으니까요. 이제 나이가 들어 쉽지 않겠지만 진정성 있고 진지한 마음으로 활기찬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잠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진 그가 무대에 올랐다. 세월에 녹슬지 않은 특유의 허스키한 음색으로 히트곡을 열창하자 객석에서는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3/09 14:39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