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남들보다 매를 먼저 맞았으니 먼저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새로운 필동 시대를 열겠습니다."
최근 법원에서 공간건축사사무소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조기 종결 결정을 받은 공간그룹 이상림 대표를 중구 필동의 신사옥에서 만났다. 이 대표는 그동안 두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짐을 조금은 내려놓은 듯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회생 절차를 밟으면서 부득이하게 역사가 깊은 종로구 원서동 공간 사옥을 매각하게 되자 그동안 공간 건축을 거쳐 간 이들부터 문화 예술계 안팎의 많은 사람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무엇보다 1981년 공간 건축에 입사해 한눈 한번 팔지 않고 원서동 공간 사옥에서 30여 년을 지낸 그가 가장 가슴 아팠을 터.
그래도 사옥 매각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공간 사옥의 매각을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공간이 부도났다"고 보도해 그에게 또 다른 시련을 줬다.
'부도' 기사가 나온 날은 하필 딸의 결혼식 날이었다. 경사스러운 날 아침 그는 온갖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법정 관리 중인데 부도라니요. 아침부터 여기저기에서 전화가 오고 난리가 났었어요. 이 상태로 딸의 결혼식에 가도 되나 고민했었죠."
신규 수주가 중단되는 등 사업상 어려움도 겪었다.
1984년 당시 공간 건축이 설계한 서울중앙지법에 법정 관리 때문에 왔다갔다하는 처지가 되자 말 못할 비애도 느꼈다.
그래도 시련을 견딘 이 대표와 공간 건축은 지난해 11월 25일 아라리오 갤러리에 공간 사옥을 150억 원에 매각하고 채무 일부를 출자 전환하면서 부채를 갚아나갔다.
당초 법원에서 인가한 채무변제계획상으로는 2022년까지 10년간 500억 원을 갚는 것이었지만 공간은 1년2개월도 안 돼 이중 420억 원을 갚는 성과를 거뒀다.
지난 1월 23일에는 중구 필동의 한 인쇄 공장 자리에 새 보금자리를 틀었다.
그래도 옛 사옥에 대한 아쉬움이나 그리움이 없을까.
"저는 사실 원서동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고 싶었어요. 그래서 가급적이면 강남 쪽으로 옮기고 싶었죠. 수없이 많은 곳을 가봤는데 어느 날 남산에서 국궁을 하고 내려오는 길에 이곳(현 사옥)을 발견했어요. 싸면서 조용하고 넓더라고요. 새로운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었죠."
주변이 조용한 주택가인데다 인근 남산으로 산책가기도 좋아 직원들도 새 공간을 마음에 들어 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사실 공간 사옥은 설계사무소로 유지하기에는 너무 비쌌다"며 "업무적으로 버리는 공간도 많고 관리비만 해도 지금 사옥의 임대료보다 더 들었다"고 옛 사옥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냈다.
공간 사옥을 매입한 아라리오 갤러리는 이르면 오는 9월 미술관으로 재개관할 예정이다. 공간 건축도 재개관 준비를 돕고 있다.
"그동안은 사옥으로 사용해서 닫아놓고 일반에 개방하지는 않았잖아요. 이제는 일반 국민도 건물을 사용하고 즐길 수 있게 됐으니 오히려 잘됐죠. 신미술관도 지어지면 하나의 '문화콤플렉스'로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공간을 세운 고(故) 김수근 선생이 애정을 가졌던 월간지 '공간(SPACE)'도 지난해 3월 다른 매체에 발행권을 넘겼지만 "공간의 기본 정신은 공유하고 있다"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올해 공간학생건축상의 주제를 '비무장지대'(DMZ)로 정하기로 하는 등 행사와 콘텐츠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의견을 나누며 협력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제 남은 숙제는 공간이 한국 건축계에서 점한 위치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라며 "건축계를 위해 생각했던 바를 충실하게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3/04 07:25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