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모여 찍은 사진이 있다. 흰 방진복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둘러싸고 눈만 내놓았다.
모르는 사람들은 구별할 수 없지만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뒷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사람만의 특유한 걸음걸이가 있고, 똑같은 모자를 써도 예쁘게 하트 모양이 잡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자가 튀어나온 모양을 보고 머리를 땋았는지 내려 묶었는지 안단다.
화학 물질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닌 사람으로부터 반도체를 보호하는 방진복에 꽁꽁 싸여 있는 노동자들은 이렇게 서로 기계가 아닌 사람임을 증명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탐욕의 제국'은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병을 얻어 죽거나 장애인이 된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를 인정받으려는 수년의 투쟁 과정을 담았다.
열아홉 살에 삼성반도체에 입사해 스물셋에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 씨와 뇌종양 제거수술을 받고 장애 1급 판정을 받은 한혜경 씨, 고온 테스트 업무를 하다 뇌암으로 숨진 이윤정 씨, 유방암 수술을 받은 박민숙 씨, 두 아이를 남겨두고 백혈병으로 숨진 황민웅 씨의 부인 정애정 씨와 그 가족들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삼성이 한국을 대표하는 초일류 기업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에서 제일 좋은 회사인 줄 알았고, 그런 회사에 입사해서 자랑스러웠고 행복했다고 말한다.
산업재해를 인정해 주지 않는 근로복지공단과 산업재해를 부인하는 삼성과의 싸움은 지난했다. 이들은 언제나 문앞에서 가로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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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고위 인사는 국정감사 증인으로 참석해 "대화로 해결하겠다"고 말하지만, 눈앞에 있는 한혜경 씨를 외면한다. 한혜경 씨는 "장애를 입었지만 내 인생은 매우 충만하다"고 말한다.
영화는 때때로 소리를 제거하고 기교 없이 찍은 화면만 보여준다. 비를 맞으며 절규하는 얼굴이나, 반도체 공장으로 향하는 길에 가로막힌 운구 차량에서 제를 지내는 모습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찍은 장면은 소리가 비어서 울림이 더 크다.
엔딩크레딧 마지막, 후원에 참여한 1천 명이 넘는 시민의 이름이 화면을 빽빽이 채우고 한참 올라갈 때도 흔한 배경음악은 없다.
지난 1월 29일부터 2월 23일까지 진행된 '개봉지원 프로젝트'에는 1천23명의 시민이 참여해 목표 금액이었던 3천만 원을 넘겨 4천400여만 원을 모았다.
영화는 4월 25일부터 5월 3일까지 스위스 니옹에서 열리는 제19회 비전 뒤 릴 국제영화제 공식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3월 6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92분.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2/26 18:3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