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남들과 뒤섞이는데 재능이 없는 로렌조(자코모 올모 안티노리). 애완동물들과만 소통할 줄 알지 사람과의 교류는 능하지도 않고 아예 관심도 없다.
어느 날 그는 수학여행에 참가하고자 관광버스 앞까지 가지만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모습에 그만 기가 죽어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엄마의 꾸중을 생각하면 집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로렌조는 수학여행 동안 자신의 아지트에서 지내기로 결심한다.
마음껏 음악을 듣고, 책을 보며 자유를 만끽하던 로렌조. 그러나 아지트로 이복누나 올리비아(테아 팔코)가 찾아오면서 그가 누린 평화는 삽시간에 깨진다.
'미 앤 유'는 '순응자'(1970),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 '마지막 황제'(1987) 등으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몽상가들'(2003) 이후 약 10년 만에 내놓은 복귀작이다.
극심한 허리 디스크로 여러 차례 수술을 받은 끝에 휠체어 신세를 져야 했던 베르톨루치 감독은 니콜로 아만티의 동명 소설을 읽으며 세상으로 나서기를 두려워하는 로렌조의 모습에서 병상에만 누워 있던 자신을 떠올렸다고 한다.
영화의 이야기는 비교적 단순하다. 복잡한 사건도 없고, 갈등 구조도 미약하다.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에 가까운 소년이 문제 많은 누나와 함께 살아가면서 다시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한다는 성장이야기가 1시간 40분가량 이어진다.
영화는 특별한 서사가 없지만, 개인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전투를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보여준다. 그리고 그 전투를 음미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서사적 빈곤을 적절하게 채우는 건 로렌조라는 캐릭터와 음악이다. 반항아 같지만 겁이 많아 보이는 역설적인 눈빛을 지닌 로렌조 역의 안티노리는 이 영화가 데뷔작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게 할 정도로 뛰어난 연기를 선보인다. 이탈리아에서 촉망받은 젊은 사진작가이자 배우인 테아 팔코의 자연스런 연기도 인상적이다.
베르톨루치 감독은 인간과 소통하지 못하는 로렌조의 일상을 매우 건조하게 보여준다. 어두운 지하에서 개미를 관찰하고, 격하게 음악을 들으며 책을 보는 로렌조의 모습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슬픔 같은 것들이 담겨 있다.
그런 슬픔의 사슬을 끊어주는 이가 이복 누이 올리비아다. 최근 마약을 끊은 탓에 금단 증세를 보이는 올리비아를 냉소적이지만 따뜻하게 보살피는 로렌조의 모습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작은 울림을 전해준다.
데이비드 보위가 자신의 노래 '스페이스 아디티'(Space Oddity)를 이탈리아어로 부른 '외로운 소년, 외로운 소녀'가 먹먹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이 노래가 흐르는 가운데 로렌조와 올리비아가 춤추는 장면은 놀라운 영화적 경험을 선사할 것 같다. 어떤 노래는 영화 전체를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데이비드 보위의 이 노래가 그렇다.
2월27일 개봉. 15세이상관람가. 상영시간 1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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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2/20 07:0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