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일제강점기 시절 황해도에 사는 14세 김금화(김새론)는 위안부 소집을 피해 시집을 가지만 환영에 시달린다. 이상한 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신기한 것들이 눈앞을 지나간다.
결국, 17세에 운명을 피하지 않고 신내림을 받아 무당이 된다.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금화(류현경)는 피난살이를 하며 남과 북을 오가지만 한때 간첩으로 내몰리며 죽을 고비를 넘긴다.
어느덧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중년에 이른 금화(문소리)는 황해도 굿을 전파하며 만신(무녀를 높여 부르는 말)으로 명성을 날리지만 '미신타파'가 횡행했던 새마을운동 시기 도망자 신세로 전락한다.
'만신'은 큰 무당 김금화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철물이굿, 만수대탁굿, 배연신굿 등 모든 굿에 뛰어난 재능을 보유한 종합예술가로 인정받으며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인물이다. 세계적인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 도올 김용옥, 황석영 작가 등 국내외 지식인, 예술인들이 그녀의 굿과 삶에 매료됐다.
김금화의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압축성장 등을 거치며 숨 쉴 틈 없이 이어진 우리 현대사의 수난기와 도약을 응축해서 보여준다. 이산의 아픔과 미신타파의 물결 속에 주변부로 내몰렸다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 조명받았던 '만신'들의 삶은 질곡의 현대사 그 자체다.
영화는 거대한 역사의 물결 속에서 이리저리 흘러가는 김금화의 삶을 통해 우리들의 이야기를 끄집어 내기도 한다. 굿이나 점을 미신이라고 치부하면서도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 그것에 의존하는 우리 안의 이중성을 꼬집는다.
다큐멘터리와 실사 영화를 뒤섞은 이 작품의 형식은 꽤 독특하다. 설치미술·사진·미디어 아트를 넘나드는 미술작가 박찬경 감독은 다큐멘터리와 실사 드라마가 이어지는 중간 중간 미디어 아트에서 볼 수 있는 스타일의 영상과 소리를 삽입했다. 이 때문에 영화는 여타 영화보다 명상적이고, 이미지의 굴곡 등 일반 영화에서 보기 어려운 스타일적인 요소도 풍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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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다가 웃기는 김금화의 실제 굿거리를 볼 수 있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양한 춤과 기예로 채워진 김금화의 굿은 주변 관객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신이 들 때마다 이 사람 저 사람으로 변해야 하는 무당은 어쩌면 천의 얼굴을 지닌 '연기'의 달인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민속학자 이능화(1869~1943)는 한민족의 무속을 정리한 책 '조선무속고'에서 "춤과 노래가 무격의 기원"이라고 무당을 정리하기도 했다. 그만큼 무속인들에게 춤과 노래는 중요했다는 얘기다.
분량이 많지 않지만 문소리의 연기가 섬뜩하다. 류현경과 김새론도 제 몫을 했다.
영화는 스타일과 내용의 전개에서 독특한 느낌을 전하지만 무속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는 담지 못했다. 영화의 방점은 어디까지나 무속 그 자체보다 한 무속인을 통해본 역사와 삶에 찍혀 있다.
3월6일 개봉. 15세이상관람가. 상영시간 104분.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2/21 06:01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