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원고를 마감하기 위해 인적 드문 펜션을 찾아가던 상진(전석호)은 길을 알려주겠다는 학수(오태경)의 '과도한' 친절에 불편함을 느낀다.
펜션까지 같이 가 주겠다는 학수를 간신히 떼어낸 상진은 다소 을씨년스럽지만 너른 펜션을 홀로 쓰는 호젓한 기분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그러나 안도감도 잠시. 글을 거의 다 완성할 때쯤, 펜션 주위에서 총을 들고 다니는 정체 모를 사냥꾼들 때문에 상진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인다.
게다가 하룻밤만 묵게 해 달라고 조르는 4명의 무례한 남녀는 자꾸 신경을 긁는다.
지인 대신 펜션을 관리하던 상진은 이들 남녀의 숙박을 허가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면서 공포에 질린다.
'조난자들'은 눈 때문에 펜션에 고립된 인물의 공포를 조명한 스릴러다.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공포감을 느끼는 이는 주인공 상진뿐이다. 영화는 상진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의심과 공포를 무기로 관객들의 심장을 건드린다.
마치 '내가 범인이다'라며 얼굴을 내밀고 다니는 듯한 학수의 존재감이 영화를 지배한다. 상진에게 베푸는 학수의 밑도 끝도 없는 호의는 관객에게 곧 중압감으로 다가온다.
특히 "술 한잔하자"는 학수의 계속된 제안을 한사코 뿌리치던 상진이 펜션 투숙객들과 술 마시는 모습을 목격했을 때 보이는 학수의 매서운 눈초리와 당황해하는 상진의 얼굴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영화는 학수뿐 아니라 상진을 압박하는 인물들을 속속 등장시킨다. 피가 낭자한 차를 끌고 펜션 주위를 이리저리 배회하는 사냥꾼들, 펜션에 머물게 해 달라고 강압적으로 요구하는 투숙객들의 모습은 관객들을 불편하게 한다.
이렇게 타인의 지나친 끼어들기에 화가 나고 짜증이 솟아날 때쯤 영화는 예상외의(심지어 황당하기까지한) 반전으로 관객들을 코너로 내몬다. 한국적 특수성을 담은 결말이기에 호불호가 있을 듯 보인다.
흰 설원 위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앙상블이 좋다. 연극배우 출신의 전석호가 중심을 잡는다. 오태경은 어딘가 모자란 듯하지만 무시무시한 학수를 잘 표현해냈다. 경찰 역할로 등장하는 최무성도 뚜렷한 존재감을 각인한다.
영화는 제33회 하와이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받는 등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았다. 무려 30여 개 해외영화제에서 주목받은 '낮술'(2009)로 데뷔한 노영석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노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각본·연출·음악·제작까지 1인 4역을 도맡았다.
3월6일 개봉. 15세이상관람가. 상영시간 99분.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2/19 07:1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