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 발레의 아버지 ‘로이 토비아스’ 추모공연
로이 토비아스(1927~2006·한국명 이용재). 오랜 발레 팬이 아닌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그는 한국 발레계의 스승 같은 존재로 한국 모던발레의 개척자다. 특히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 서울발레시어터 등 한국 3대 발레단의 발전과 창단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타계 10주기였던 지난해 성사되지 못했던 로이 토비아스 추모공연 ‘Remembering of You... ROY’이 22일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개최된다. 그가 예술감독을 역임했던 유니버설발레단과 서울발레시어터가 주최하는 이번 추모공연에는 유니버설발레단, 서울발레시어터, 서울발레단, 센트럴발레단, Ballet frontier of Texas, 선화예술고등학교가 참가한다.
헌정무대에는 그가 직접 안무한 작품을 비롯해 그와 교류했던 안무가들의 작품이 선보여질 예정이다.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인 그는 ‘세계발레사전’에도 이름이 올라있을 만큼 발레사에서 중요한 무용수이자 교사였다. 16세의 나이에 발레 씨어터(아메리칸 발레 씨어터의 전신)에 입단한 그는 1944~1946년 브로드웨이에서 ‘회전목마’ ‘하이 버튼 슈즈’ 등의 뮤지컬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그는 1년간 그랑 발레 뒤 마르키 드 퀘바스(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전신)에서 활동하다 뉴욕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의 진정한 경력은 신고전주의를 지향하는 조지 발란신과 만나면서부터다. 발란신이 만든 아메리칸 발레 학교에 들어가 다시 트레이닝 받은 후 1950년 뉴욕시티발레단에 들어갔다. 10년간 활동하며 수석무용수까지 오른 그는 발란신의 대표작인 ‘아곤(Agon)' ‘디베르티멘토 15번’, 로빈스의 ‘팬페어’ 등의 초연 멤버로 출연하기도 했다. 뉴욕시티발레단 퇴단 후 1961~1963년 일본에서 발레를 가르친 그는 1980년대까지 일본의 주요 민간발레단에서 안무가와 자문으로 활동했다.
1963년 임성남 국립발레단 초대 단장의 초청으로 내한해 안무를 맡은 것이 한국과의 첫 인연이다. 1981년 다시 내한한 그는 국립발레단에서 3개의 작품을 안무하는 동안 한국에 매력을 느꼈다. 이후 1987년 유니버설발레단 발레마스터로 내한한 뒤 1988~1995년 유니버설발레단 예술감독 겸 안무가로 재직하며 한국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1995~2003년 서울발레시어터의 예술감독 겸 안무가로 재직함으로써 국내 3대 발레단과 모두 인연을 맺었다. 그는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 김인희 발레STP협동조합 이사장 등 현재 한국 발레계 중진들의 아버지이자 스승 같은 존재였다. 한국을 사랑했던 그는 1999년 귀화를 선택, 제자들과의 인연을 이어가다가 2006년 숙환으로 세상을 떴다.
권병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