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924만원 놓고 가…14년간 총 3억5천만원
(전주=연합뉴스) 홍인철 기자 = 전북 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도 찾아왔다.
2000년 첫 성금을 기부한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14년째 몰래 나타나 세밑을 훈훈하게 하고 있다.
30일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15분께 50대 안팎으로 짐작되는 한 남성이 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어 '돈을 놓고 갔다'고 알렸다.
이 남성은 통화에서 "주민센터 앞 화단에 있는 '얼굴없는 천사 비' 옆에 돈을 놓았으니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주세요"라는 짤막한 말을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
직원들이 주민센터 모퉁이에 있는 현장에 달려가 봤더니 그곳에는 돼지저금통과 현금 뭉치가 들어 있는 종이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거기에는 5만원권·1만원권 지폐와 100짜리 동전 등 모두 4천924만6천740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는 지난해와 비슷한 금액이다.
또 상자 속 A4 용지에는 큼지막하게 "소년 소녀 가장 여러분, 어렵더라도 힘내시고 새해 복 많이 많으세요"라고 적힌 메모가 들어 있었다.
성금이 놓여 있던 '얼굴없는 천사 비'는 전주시와 노송동 주민들이 천사의 뜻을 기리고자 세운 것으로 지난해에도 이곳에 돈이 놓여 있었다.
기념비에는 송하진 전주시장이 직접 붓글씨로 쓴 '얼굴 없는 천사여, 당신은 어둠 속의 촛불처럼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참사람입니다. 사랑합니다'라는 글이 새겨졌다.
주민센터 측은 성금을 전달한 시점, 방식, 전화 목소리 등을 종합해볼 때 지난 13년간 찾아왔던 그 '얼굴 없는 천사'가 맞는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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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도 찾은 전주 '얼굴 없는 천사'
- (전주=연합뉴스) 백도인 기자 = 30일 오후 전북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에서 직원들이 환한 표정으로 '얼굴 없는 천사'가 기부한 성금을 세고 있다. 2013.12.30 doin100@yna.co.kr
그는 성탄절을 전후해서 해마다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씩 지금까지 모두 3억5천만원에 가까운 거액을 기부했다.
그러나 이 '얼굴 없는 천사'는 이번에도 자신을 전혀 드러내지 않아 신원은 여전히 안갯속에 남았다.
특히 올해는 시민의 궁금증이 더했다.
매년 성탄절 전후에 다녀간 이 '얼굴 없는 천사'가 연말이 다되도록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여 올해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건너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조심스러운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계사년을 이틀 앞두고 나타난 천사 소식에 시민은 반색했다.
정모(45.회사원)씨는 "몇년전 일부 방송사가 몰래카메라까지 설치해 이 천사의 신분을 밝혀내려 한 것을 기억한다"며 "이 때문에 그가 신분 노출을 꺼려 올해는 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매년 첫눈을 기다리듯 천사의 출현을 기대했는데, 늦게나마 그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든든해지고 따뜻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송하진 전주시장은 "해마다 전주시에 익명으로 거액을 내놓는 '얼굴없는 천사'의 영향으로 유독 전주에는 보이지 않게 남을 돕고자 하는 숨은 선행이 많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남몰래 좋은 일을 하겠다는 것이 그의 뜻인 만큼 앞으로도 지나친 관심이나 부담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2/30 13:34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