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 첫 피아노 독주 앨범 발매 기자간담회
(서울=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정명훈(60)이 최근 생애 첫 피아노 독주 음반을 냈다.
1974년 러시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위로 입상하며 피아니스트로 세계 음악계에 이름을 알리긴 했지만 정작 피아노 독주 음반을 낸 적은 없었다.
그런 그가 조금은 평범한 할아버지로 돌아가 어린 두 손녀를 위해 피아노 앞에 앉았다.
24일 오전 대치동 마리아 칼라스 홀에서 기자들과 만난 정명훈은 "피아노라는 악기는 음악적으로 아직도 나와 제일 친하고 사랑하는 친구"라며 "손녀 둘이 생겼는데 '그 아이들을 위해 음반을 하나 만들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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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첫 피아노 음반 발표한 정명훈
- (서울=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생애 첫 피아노 음반을 발표한 지휘자 정명훈이 2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마리아 칼라스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다. 2013.12.24 xanadu@yna.co.kr
7남매의 여섯째로 형제 상당수가 음악을 하는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음악과 친해졌다는 그는 "태어나자마자 음악 속으로 들어갔고 일평생 음악 이외에 다른 것을 할 생각을 한 적이 없다"며 "음악은 일찍 시작할수록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손녀들을 염두에 두고 녹음한 음반인 만큼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거나 피아노를 배우면서 직접 쳐봤을만한 익숙한 멜로디의 소품 위주로 직접 선곡했다.
그는 "이번 레퍼토리는 아이들에게 특별히 재미있을 곡들이고 아이들이 듣자마자 무슨 곡인지 알 만한 것들도 몇 가지 있다"며 모차르트의 '작은 별 변주곡'을 즉석에서 연주했다.
앨범에 수록된 드뷔시의 '달빛'은 유달리 음악을 좋아하는 둘째 손녀 루아(Lua·달)에게 선물하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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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에 답하는 마에스트로 정명훈
- (서울=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생애 첫 피아노 음반을 발표한 지휘자 정명훈이 2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마리아 칼라스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3.12.24 xanadu@yna.co.kr
"한 살이 되기 전인데 연주실황 영상을 보고 또 보고, 음반을 듣고 또 들어요. 두 달쯤 전엔가 베토벤 교향곡 5번 녹화 영상을 반복해서 보더니 '빠빠빠 뿡, 빠빠빠 뿡' 이러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달이라는 뜻의 '루아'를 생각하며 드뷔시의 '달빛'을 넣었죠."
손녀들에게 주는 곡뿐 아니라 큰아들의 결혼식에서 연주했던 슈베르트의 즉흥곡 G플랫장조,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연주했던 '가을노래' 등 그의 삶에서 중요한 순간들에 함께했던 의미 있는 소품들을 모았다.
쇼팽의 '야상곡' c 샤프단조는 그의 음악 세계에 큰 영향을 준 누나이자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에게 바치는 곡이기도 하다.
"예전 누나와 여러 번 같이 연주했던 곡입니다. 누나는 특별한 사람이고 뜨거운 열정을 가진 음악가입니다. 평생 만나본 음악가 중에서 가장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영향도 도움도 많이 받았지요."
그의 이번 첫 피아노 독주 음반은 특히 독일의 명장 만프레드 아이허가 이끄는 유명 레이블 ECM에서 발매돼 화제를 모았다.
처음 피아노 음반 발매를 제안한 둘째 아들 선(31)씨가 ECM의 첫 한국인 프로듀서로 활동하는 인연으로 아이허와 지난 7월 이탈리아 베니스의 라페니체 극장에서 녹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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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에 답하는 마에스트로 정명훈
- (서울=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생애 첫 피아노 음반을 발표한 지휘자 정명훈이 2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마리아 칼라스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3.12.24 xanadu@yna.co.kr
ECM과의 작업에 대한 소감을 물었더니 "재미있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음반을 녹음할 때는 피아니스트라는 생각 없이 음악적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표현하고 싶은데 한 음 한 음 완벽하고 깨끗하게 연주해야 하다 보니 기교적인 면으로 흐르기 쉬워요. 그런데 이번 녹음은 그냥 쭉쭉 연주해보고 그중에서 고른 겁니다."
함께 작업한 아이허에 대해서는 "한 곡을 여러 번 치면 그중에서 어느 버전이 특별히 좋은지 확실히 골라내는 재주가 있는 분"이라며 "참 재미있었다. 곡을 녹음하는데 굉장히 편했다"고 했다.
피아니스트로서가 아니라 지휘자로서, 아이들의 할아버지로서 피아노 앞에 앉으니 부담감은 줄고 즐거움은 커졌다.
"피아니스트로 연주할 땐 한 가지가 마음에 안 들면 그날은 다 실패라고 생각할 정도로 심했는데 이제는 피아노 연주가 훨씬 재미있어졌습니다."
그러나 피아니스트로서 정식으로 내놓는 음반은 아니다. 정식 피아노 음반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피아니스트로서 음반을 발매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손녀를 위해, 아이들을 위해,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피아노를 통해 들려주고자 했습니다. 이번에 재미있었기 때문에 다음에 어쩌면 진짜 피아니스트로서 음반 작업을 해볼지 모르겠습니다. 연습할 시간을 갖게 되면 쇼팽 음반을 하나 낼까 합니다."
그가 이끄는 서울시향은 오는 27~2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베토벤 '합창' 교향곡을 연주하고 내년 1월에는 서울시향과 음반 녹음 작업을 진행한다. 앞서 서울시향이 지난해 공연한 '합창' 교향곡은 도이체 그라모폰 레이블로 발매됐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2/24 14:48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