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내한하는 합창단 첫 여성·동양인 지휘자
(서울=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 지난 2012년 9월, '천상의 하모니'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빈 소년 합창단이 520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그것도 동양인을 지휘자로 맞아들였다.
화제의 주인공은 당시 빈 국립음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한국인 유학생 김보미(36)씨.
김씨는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작곡가 하이든, 모차르트, 브루크너, 슈베르트의 이름을 딴 4개 팀으로 구성된 이 합창단에서 모차르트 팀의 상임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지난 4~6월 모차르트 팀과 일본 전국 순회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데 이어 내년 1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신년음악회를 시작으로 한국 무대를 밟는다.
이번 공연에는 2010년 합창단 최초의 한국인 단원으로 부르크너 팀에 입단한 조윤상(13) 군에 이어 두 번째 한국인 단원으로 올해 모차르트 팀에 입단한 정하준 군이 함께한다.
지난 17일 저녁 전화로 만난 김씨는 빈 소년 합창단 지휘자로서 한국 관객들과의 첫 만남을 앞두고 잔뜩 기대에 부푼 목소리였다.
그는 "일본 공연은 지휘자로서 첫 외국 공연이라 감회가 남달랐는데 이번 한국 공연은 관객이 한국인 지휘자에게 기대하고 바라는 것들이 분명히 더 있을 것"이라며 "그런 부분을 잘 채워 드리고 싶은 부담감도 있다"고 말했다.
"잘 준비해서 좋은 무대를 보여 드리고 싶어요. 공연 중간마다 지휘자와 아이들이 관객들에게 곡에 대해 설명하는 순서가 있는데 제가 한국어로 설명하면 관객들의 속이 얼마나 시원할까 하는 생각에 벌써 정말 좋습니다. (웃음)"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소년 합창단의 첫 여성이자 동양인 지휘자로서 그에게 쏠리는 관심이 남다른 만큼 어깨도 무거울 터.
"빈 소년 합창단이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문화사절단 역할을 하는 만큼 지휘자가 여성이고 동양인이면 눈에 더 띄는 것은 사실이죠. 그래서 남보다 2~3배 더 열심히 준비하고 무대에 오르려고 했어요."
노력으로 부담감을 떨쳐내니 일은 더없이 즐거워졌다.
"빈 소년 합창단 지휘자는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피아노 반주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지휘까지 하면서 공연 전반을 이끌어가야 해 종합적인 능력이 요구됩니다. 어린 시절 피아노치고 노래하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지금 하는 일이 제가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모든 일의 집합체여서 정말 행복해요."
합창단은 팀마다 보통 10~14세의 소년 20여 명으로 구성되는데 오디션을 거쳐 단원으로 선발되면 가족과 떨어져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학업과 공연 일정을 소화한다.
30대 미혼 여성이 한창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장난기 많은 개구쟁이 소년들을 이끌고 세계 곳곳을 누비며 공연하러 다니는 게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마냥 좋단다.
"오디션을 거쳐 들어온 만큼 음악을 좋아하고 잘하는 아이들이라 지도하는데 어려움은 없어요. 아이들 한명 한명의 특성이나 성향을 파악하는 게 중요해서 연습시간 외에도 같이 밥 먹고 놀이공원이나 영화관도 다니면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엄마나 이모 같은 존재가 아닐까 했더니 "정말 그렇다. 가족의 정에 목말라하는 부분도 있어서 더 친해지려 하고 막내들도 품으로 더 끌어안으려 한다"며 "아이들과 친해지니 처음 왔을 때보다 분위기가 더 가족적으로 바뀌고 공연에서 호흡도 점점 잘 맞는다"고 소개 했다.
옆에서 지켜본 빈 소년 합창단 520년 오랜 역사의 비결은 뭘까.
"일하면서 보니 합창단이 오스트리아의 전통문화를 잘 보존하고 유지해나가는 것이 가장 큰 힘인 것 같아요. 500년 전과는 레퍼토리가 달라졌겠지만 1800년대 하이든 미사곡, 모차르트 종교 합창곡을 여전히 부르고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는 고정 레퍼토리입니다. 우리 음악계도 국악을 잘 보존하고 유지해야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요."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2/18 16:05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