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박물관, 포천 겨리쟁기 등 10점 농업보물 지정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소를 이용한 농경 도구인 쟁기는 흔하다. 하지만 현존하는 쟁기 대부분은 소 한 마리에 메어 사용한 '호리쟁기'지 두 마리가 끄는 '겨리쟁기'는 드물 뿐만 아니라 100년가량 된 것은 희소하기만 하다.
100년 된 쟁기가, 그것도 보습이며 볏이며 손잡이까지 완벽하게 세트로 남은 쟁기가 경기 포천시 영북면 운천리 한 농가에 남아있다는 사실을 민속학자인 김광언 인하대 명예교수를 통해 알게 된 농협 산하 농업박물관 김재균 관장은 기증을 받고자 2008년부터 공을 들였다.
하지만 당시 소유자인 임영호 씨는 1901년생인 선친이 남긴 물건이라면서 내어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김 관장은 계속 임씨와 접촉하면서 기증을 설득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임씨가 타계하고 쟁기는 큰아들 기재씨한테 넘어갔다. 이제는 기증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접촉했지만 "할아버지, 아버지가 사용하시던 물건을 내어줄 수 없다"거나 "내 혼자만의 유산이 아니라 형제 공동의 재산이므로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말만 듣고 설득에 실패했다.
그렇지만 김 관장은 소장자와 친분이 남다른 농협 조합장 등을 동원하고 "기증하시면 겨리쟁기를 '농업보물'로 만들겠다"고 설득해 이번 달에 기어이 쟁기를 기증받는 데 성공했다.
서울 서대문로터리 인근 농업박물관이 소장유물 5천 점 중에서도 역사적 가치와 희소성이 뛰어난 10점을 엄선해 최근 '농업보물'로 지정하고, 40점은 '중요농업유물'로 선정했다.
김광언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엄선한 '농업보물' 중에서 현재까지 알려진 겨리호리 중에서 만든 시기가 가장 오래됐고, 보존상태가 가장 완벽한 포천 쟁기가 1호 보물로 뽑혔다.
이를 필두로 두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이 사용한 신안 당두 외다리 디딜방아와 오직 쟁기만을 운반할 목적으로 제작된 지게, 폭이 230㎝에 달해 평야지대에서나 사용한 초대형 전남 영광 하사 써레, 축력 대신 사람이 직접 끈 평창 상월오개 인걸이, 제주 밭농사 특성을 살린 서귀포 시흥 남태, 벼만 해도 40가마 이상 저장하는 초대형 야외 곳간인 진주 대곡 나락뒤주, 옹기가 들어갈 수 없는 산간오지에서 사용된 삼척 판문 나무독, 곡선의 나무에 홈을 세 군데 판 세칸 구유, '닭 공동주택'인 신안 방월 어리가 농업보물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세칸 구유 |
김 관장은 "농업문화재 지정은 농업유물이 그동안 역사가 짧고 흔하다는 이유로 다른 유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가치가 저평가됐고 학계 등으로부터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는 자성에서 비롯됐다"면서 "이를 통해 농업유물에 새로운 생명과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이에 대한 대국민 인식을 전환시키고 농업인들에게는 자긍심을 고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그동안 국보 혹은 보물이라고 하면 대부분 왕족이나 양반, 혹은 장군과 같은 지배계층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쇠똥 묻은 쟁기나 닭똥 묻은 어리 같은 농업유물이야말로 진정한 보물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번에 농업문화재로 지정한 농업유물 중 16점은 19일부터 내년 3월30일까지 농업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하는 특별전에서 공개된다.
이에 맞춰 박물관은 농업문화재를 원색 도판을 곁들여 설명한 도록 '농기구, 보물이 되다'를 발간했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2/17 15:45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