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상, 올해도 파행속에 진행
올해로 53회째를 맞는 대종상영화제가 우여곡절 끝에 작년에 이어 주인공 없는 반쪽짜리 행사로 치러졌다. 영화제의 수상자들이 해외촬영 등을 이유로 대거 불참하는 촌극이 일어났다. 이병헌과 이범수 등 몇몇 무게감 있는 배우들이 참석해 그나마 영화제 체면을 세웠지만, 주·조연 배우뿐만 아니라 나머지 수상자들도 상당수 참석하지 않아 시상식 내내 대리수상이 이어졌다. 27일 오후 서울 세종대학교 컨벤션홀에서 열린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에서는 영화 '내부자들'이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이병헌(내부자들)과 손예진(덕혜옹주)은 각각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병헌은 수상 소감에서 "상을 받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지금은 무거운 마음이 앞선다"면서 "대종상이 그동안 말도 많고 문제도 많았고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느낌이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53년 동안 명맥을 유지하고 명예로웠던 시상식이 불명예스럽게 없어지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모두가 한마음이 돼 조금씩 노력하는 순간에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병헌은 2001년 대종상영화제 '네티즌이 뽑은 인기상'에 이어 두 번째로 대종상 무대에 섰다. 손예진이 이날 촬영 일정을 이유로 불참한 것을 비롯해 '시상식의 꽃'인 다른 배우들의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남우주연상 후보인 곽도원(곡성), 최민식(대호), 하정우(터널), 송강호(밀정)가 불참했다.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두나(터널), 윤여정(계춘할망), 이태란(두 번째 스물), 심은경(널 기다리며), 강예원(날 보러와요)도 참석하지 않았다. '밀정'의 엄태구와 '덕혜옹주'의 라미란은 각각 남녀조연상을 받았지만 역시 촬영 등을 이유로 대리 수상자가 상을 받아갔다. '내부자들'은 최우수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이병헌), 감독상(우민호), 기획상(김원국), 시나리오상(우민호) 등 5개 부문을 휩쓸었다.
'덕혜옹주'는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을 비롯해 의상상, 음악상을 받았다. 그러나 수상자 전원이 불참해 이 영화의 프로듀서가 모두 대리 수상하자 영화제 진행을 맡은 김병찬 아나운서는 "저 프로듀서가 오늘 몇 개의 상을 대신 전달할지 궁금하다"는 코멘트를 날리기도 했다. '곡성'도 신인여우상(김환희)을 비롯해 녹음상, 편집상, 조명상, 촬영상 등 5관왕에 올랐다. '곡성' 역시 김환희를 제외하고 나머지 수상자들은 모두 불참해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김환희가 무대에 올라 "상을 잘 전달하겠다"는 소감을 말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대리수상이 계속되면서 시상식이 예상보다 빨리 진행되자 시간을 끌기 위한 진행도 이어졌다. 인기상을 받은 이범수가 수상 소감을 마치고 무대 위에서 내려가려 했지만, 진행자들이 불러세워 추가로 소감을 더 말하게 하는 어색한 상황도 발생했다.
올해 대종상 영화제의 파행은 어느 정도 예고됐다. 개최 여부를 둘러싸고 내부 진통을 겪은 끝에 시상식을 불과 열흘 정도 앞두고서야 후보작을 발표했다. 연말 일찌감치 스케줄이 잡혀있던 배우들의 참석이 애초 쉽지 않았던 셈이다. 대종상영화제는 1962년 제1회 시상식이 열린 이래로 꾸준히 유지된 국내 대표 영화 시상식 중 하나다. 그러나 영화제 조직위원회와 집행위원회 간 내부 갈등과 수상자 선정 과정에서 공정성 논란이 이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영화제에 참석하지 않은 배우에게는 상을 주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가 남녀주연상 후보와 인기상 수상자 전원이 영화제를 보이콧하는 역풍을 맞았다.
올해 대종상영화제도 내부 갈등 끝에 뒤늦게 개최가 확정됐지만, 영화인들의 신뢰를 잃어 총 29편의 작품이 출품되는 데 그쳤다. 올해 최고 흥행작인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을 비롯해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이준익 감독의 '동주' 등은 출품 자체를 하지 않아 후보에 포함되지 않았다. 정중헌 대종상 심사위원장은 이날 시상자로 나서 "상을 잘 차려놓았지만, 손님이 별로 오지 않은 모양새인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낸 뒤 "17명의 심사위원이 8일간 출품작을 모두 본 뒤 공정성을 기해 수상작을 선정했다"고 강조했다.
스포츠닷컴 연예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