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제공 : 강화군청 >
백범은 조선민족의 아버지, 임시정부의 수호신이라 불릴 만큼 근세 가장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황해도 출신의 그가 강화도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강화읍 남문에서 시내 방향으로 100여 m쯤 가다 보면 일명 김구 고택으로 불리는 일제강점기 한옥이 눈에 띈다.
행랑채와 안채 그리고 직물공장으로 구성된 이 건물은 한때 백범 김구가 강화도를 방문해서 머물렀다고 전해 오고 있다.
전통한옥에 일본식 유리 창문이 독특한 매력을 주고 있다.
백범일지에 따르면 1900년 25세 청년 김구는 2월 어느 날 지인을 만날 생각으로 강도남문(강화읍 남산리 소재)을 거쳐 성안으로 들어온다.
몇 년 전 그가 감옥에 있을 때 그를 구명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은 김주경이라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미 김주경은 가산을 모두 날리고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난 뒤라 동생인 김진경의 집에 머물며 학동 30여 명을 모아 석 달간 서당을 운영했다.
이때 이름도 김구로 개명했다고 전한다.
그 후 김구는 1947년 강화도를 다시 방문해 이 고택에서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집안에 들어서면 백범이 직접 썼다고 전해지는 '신독'이라고 쓰인 현판 글씨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또한, 인근 합일초등학교에 가면 '홍익인간'이라는 휘호가 적힌 현판이 보관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편 강화군은 2018년 올해의 관광도시를 맞아 백범의 활동과 사료를 모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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