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작 '방과 후 전쟁활동'…"입시는 칼 안 든 전쟁"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최근 콘텐츠 시장에서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웹툰이다.
'웹'과 '카툰'의 합성어인 웹툰은 누구나 즐겨보는 만화를 온라인으로 옮겨와 스마트 기기 바람을 타고 빠르게 확산했다. 네이버 웹툰의 경우 방문자가 하루 평균 620만명, 한 달 평균 1천700만명에 이른다.
웹툰 작가 하일권(31)은 그 중심에 있다.
웹툰 초창기인 2006년 '삼봉이발소'로 데뷔한 그는 '목욕의 신'과 현재 연재 중인 '방과 후 전쟁 활동' 등의 히트작을 잇따라 선보이며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최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는 '2013 국제콘텐츠콘퍼런스(DICON 2013)'에 참석한 그를 행사장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만났다.
"웹툰의 매력이요? 쉽고 빠르게 볼 수 있다는 점이죠. 그 때문에 단기간에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웹툰의 성장 동력을 다른 어떤 문화 콘텐츠보다 뛰어난 편의성에서 찾았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열면 30초 안에 한 회 분량을 '쓰윽'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 작가는 "웹툰이 이렇게 성장할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며 "초창기에는 '이게 무슨 만화냐'며 만화계의 '이단' 취급을 받기도 했다"고 크게 달라진 인식을 전했다.
일요 웹툰 '방과 후 전쟁 활동'은 정체불명의 '세포'들이 지구를 덮치면서 군대로 징집된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청춘의 상징인 '고교생'과 생사가 교차하는 비정한 '전쟁터'를 접목시킨 작가의 상상력이 흥미롭다.
"고등학생과 전쟁이라는 상반되는 이미지가 붙었을 때 폭발적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어요. 전쟁에 투입되고, 그 '전리품'으로 대학 가산점이 내걸렸을 때 학생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죠."
그는 "칼만 들지 않았을 뿐이지 입시도 서로 밟고 올라가는 전쟁이지 않느냐"며 "주인공들은 '세포'의 정체를 끝까지 모른다. 우리가 학교에서 입시 전쟁, 사회에 나가서도 경쟁에 내몰리는 등 상대를 알지 못한 채 싸우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외계 생명체와의 전쟁을 그리면서 인간형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해봤어요. 하지만 '구형 세포'로 한 가장 큰 이유는 그리기가 쉽기 때문이었죠. 자주 등장할 텐데 디자인이 복잡하면 안 되니까요. 하하"
평범한 입시생으로 살아가던 등장인물들이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점은 작품의 백미다.
특히 전쟁통에 정신을 잃은 여자 급우에게 '눈독'을 들이는 찌질한 캐릭터 '국영수'는 이를 잘 나타낸다.
"국영수는 어찌 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캐릭터예요. 잘 공부하고 있는데 전쟁이 일어나 모든 것이 엎어진 거죠. 전쟁에서는 공부보다는 체격이 좋고 빠른 아이들이 잘 살아남으니까요.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불안감이 표출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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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거의 모든 인물에 조금씩 나 자신이 투영돼 있다"며 "지켜보기만 하는 소심한 캐릭터 김치열일 수도 있고, 국영수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전쟁터를 회색톤으로 그려낸 작품처럼 하 작가는 자신의 학창 시절을 가리켜 "우울했다"고 회고했다.
미대를 지망했지만 일단 입시의 벽을 넘어야 했기에 학교와 미술학원만 오갔다고 했다. 스스로 '낙서하기 좋아하는 아이'였다는 그는 만화보다는 애니메이션에 더 관심이 있었지만 열악한 현실에 당시 태동기를 거치던 웹툰에 도전하게 됐다.
"애니메이션 감독을 해 보고 싶었지만, 국내 시장이 어렵다 보니 일할 곳이 없었죠. 그러다가 웹툰이 막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여기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어요."
'방과 후 전쟁 활동'은 현재 다음 달로 예정된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그러나 이토록 심혈을 기울여 작품을 만들어내도 웹툰의 특성상 독자들이 한 회를 소비하는 시간은 30초가 채 되지 않는다. 작품의 완성도를 추구하는 작가로서는 여간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저희도 30초 만에 한 회를 봐요. 주로 그림보다는 글과 스토리만 보죠. 그래서 생활툰이 아닌 극화를 그리는 작가들은 '눈에 띄지도 않는 배경이나 세밀한 그림까지 그려야 할 것인가'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는 "작가의 성향에 따라 효율적으로 그리는 사람도 있고, 작품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 세심하게 그리는 사람이 있다"며 "나는 그 '반반'이다"라고 덧붙였다.
이 뿐 아니라 웹툰이 대부분 '무료'로 인식된다는 점은 풀어나가야 할 또 다른 과제다. 최근 수익 모델 가운데 하나로 작품 하단에 광고가 붙거나 기업 홍보 웹툰이 등장했지만, 작품성을 해친다는 지적이 있다.
하 작가는 "예전에는 노래 한 곡을 내려받는 것도 무료로 생각했지만, 관계 기관의 오랜 노력으로 지금은 '노래는 유료'라는 인식이 생겼다"며 "웹툰도 자연스레 유료화될 것 같다. 인식의 문제다"라고 내다봤다.
이어 웹툰의 광고에 대해 "눈살이 찌푸려지는 과도한 PPL(간접 광고)로 작품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이상 하나의 수익 모델이라고 본다"고 부연했다.
그럼에도 웹툰은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2차 창작물로 가공되는 등 어느새 주요한 콘텐츠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의 전작 '목욕의 신'도 내년 개봉을 목표로 영화화가 진행되고 있다.
"포털 이외에도 많은 웹툰 사이트가 생겨나는 게 중요합니다. 포털 사이트든 독립 사이트든 각자의 장단점이 있으니까요. 일단 시장이 커져서 작가들이 원하는 분야에서 활동하는 게 이상적이라고 봅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1/22 06:0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