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요절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31)가 연주회를 앞두고 부산에서 택시를 타고 가다 숨진 채 발견됐다. 12일 경찰과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등에 따르면 권씨는 이날 0시 30분께 해운대구에 있는 한 호텔 앞에 도착한 택시에서 숨졌다. 택시 운전기사는 "손님이 광안대교를 지날 때 의식이 있었고 이후 잠을 자는 것처럼 보였는데 호텔에 도착했을 때 숨을 쉬지 않았다"며 "호텔 직원이 달려와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으나 깨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그는 119구조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사망한 뒤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권씨는 12일 오후 7시 30분 부산 문화회관 연주회를 앞두고 전날 서울에서 부산으로 와 당일 저녁 부산 남구에 사는 친구 집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신 뒤에 12일 0시 10분께 택시를 타고 해운대 호텔로 이동했다. 경찰은 권씨의 소지품에서 부정맥과 관련된 약을 발견했으나 정확한 사인을 가리고자 부검하기로 했다.
권혁주와 긴밀하게 협력해온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관계자는 "고인이 평소 부정맥 증상이 있던 것으로 알고 있으나 전날 청주를 약간 마셨을 뿐 과음하지는 않은 것으로 들었다"며 "최근 연주 스케줄이 바빴고 평소 투어 때 손수 운전하곤 해서 쌓인 피로가 건강에 무리를 준 것이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권혁주는 3세에 바이올린을 시작해 6세에 음악저널 콩쿠르에서 최연소 1위를 하며 일찍부터 주목받은 '바이올린 영재' 출신 연주자다. 7세때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에 들어가 김남윤에게 배웠고 2년 뒤 러시아로 유학을 가 모스크바 중앙음악학교와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공부했다.
11세이던 1997년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영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2위에 오르고 2004년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우승, 같은 해 덴마크 칼 닐센 바이올린 콩쿠르 한국인 최초 우승, 이듬해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6위 입상 등으로 국제무대에서도 실력을 입증했다. 2006년에는 제2회 금호음악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모스크바 방송 교향악단,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국내외 유수의 교향악단과 협연하고 금호아시아나솔로이스츠, 칼라치 스트링 콰르텟, 올림푸스 앙상블 등 실내악단 멤버로도 참여하며 동 세대 바이올리니스트 가운데에도 손꼽히게 바쁜 활동을 해왔다. 연주활동을 하는 한편으로 서울대, 한국예술종합학교에도 출강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뛰어난 재능과 성실함으로 촉망받던 젊은 연주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음악인과 팬들은 SNS 등을 통해 애도를 표했다.
대관령국제음악제 예술감독으로 있으면서 권혁주를 비롯한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무대를 열어온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페이스북에 "혁주를 이렇게 떠나보내니 황망함과 비통함을 금할 수 없다. 그는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고 음악을 지독히도 사랑한 청년이었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이토록 빨리 이별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고인을 기렸다. 정경화는 이어 "혁주야 마음이 몹시 아프구나. 편히 쉬어라. 너를 영원히 잊지 않으마"라고 애통해 했다.
피아니스트 김정원도 페이스북에 "혁주야, 네가 얼마나 진지하고 진실한 음악가였는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아이처럼 순수했던 네 성품과 네 음악이 세상에 남긴 위로와 감동은 영원히 기억될 거야. 늘 과로에 시달렸던 너, 이제는 편히 쉬렴"이라고 쓰고 권혁주와 협연한 영상을 올렸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항상 좋아했던 형이자 동료였다. 슈트라우스 바이올린 소나타를, 차이콥스키 트리오를 처음 같이 연주했고, 같이 유럽으로 연주여행을 했다. 형이 살아온 얘기를 듣는 게 너무 좋았는데 너무 일찍 떠나셨다"고 슬퍼했다.
고인의 생전 마지막 무대였던 지난 4일 '임선혜 & 앙상블 오푸스 볼프 이탈리안 가곡집' 대구 공연을 함께한 소프라노 임선혜는 "혁주씨 생각 없이 이 노래를 하긴 힘들 것 같다"고 적었고, 앙상블 오푸스의 예술감독인 작곡가 류재준은 당시 연주회 사진과 함께 "우리는 천재를 잃은 것이 아니라 우리 옆의 가장 소중한 친구를 보냈습니다"라고 애도했다.
스포츠닷컴 문화,예술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