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채장인(? 丈人) 금관 김한섭
[최혜빈 기자/스포츠닷컴]
등채는 원래 조선시대 무관이 융복이나 구군복(具軍服)을 입고 궁중 출입이나 외부에 공무상 나갈 때에 지휘봉 겸 말채찍 등으로 사용하던 용구로 등편(藤鞭) 또는 등책(藤策)이라고 불렀다.
주로 머리에 전립을 쓰고 동달이와 전복을 입은 다음 관대와 전대를 띠고 화(靴)를 신으며, 한손에는 등채를 들고 업무를 보던 것이 옛 무관의 옷차림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무관이라고 해서 다 등채를 착용한 것은 아니고 포도대장 이라든가 한 부대의 장(長)쯤은 돼야 착용하던 것이었다.
옛 우리 조상들은 5가지 색, 즉 오방색이라 하여 세상의 온갖 상서로운 기운과 잡귀를 몰아내는 부적색으로 이 다섯가지 색깔을 그림이나 문간 또는 단청 등에 사용해 왔는데, 이 등채 역시 오색(五色)을 미대에 부착하여 제작했다.
거기다가 놋쇠 장식을 붙인 이 등채는 권위와 힘의 상징이었다.
손가락 굵기만한 막대의 손잡이 부분은 초록빛 전(氈)으로 두르고, 청홍의 천을 늘어뜨렸으며, 두 가닥 끈을 내어 중간에서 두 번 동이고 술을 달아 늘어뜨려 장식하였다.
주로 굵은 등나무로 만들며 둥근 모양의 긴 막대기의 형태로 원래는 등(藤) 토막의 머리 쪽에 물들인 녹피(鹿皮)나 비단끈을 단 데서 등채라 하였으며, 평상시에는 물들인 사슴가죽이나 색깔있는 비단끈을 달고 국상 때에는 백의와 함께 백색끈을 달기도 하였다.
특히 왕이 중요한 국가적 행사나 국난 등 외부에 행차할 때에는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착용구로서 지휘봉으로서 사용되었다.
이와 같은 등채를 오랜 세월 연구하고 제작 수련을 갖어 온 금속공예가 김수오 씨는 (사)대한명인회가 지정한 명인으로 그간 은장도 부문 명인으로 작품활동을 해 왔다.
그러나 그가 연구해 온 이 전통공예품인 이 ‘등채’는 그의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간 국내 군부대 장성과 외국 군 부대 장성급과 해외사절단 그리고 큰 기업의 장 등 많은 이들이 이 등채의 의미를 알고, 특별 주문하여 제작해 주었다.
말 그대로 ‘지휘봉’이라 함은 소속한 무리를 이끌고 나가는 하나의 상징이다.
조선시대 왕과 군신이 그 위엄을 갖추고 지휘봉과 말채찍으로 사용했던 ‘등채’는 우리 한국문화물 중에서도 무(武)와 기(氣)의 상징적인 전통공예이다.
‘등채’의 장인(丈人)인 금관 김한섭 금속공예가는 앞으로 이 등채 작품을 더욱 공들여 만들고 호국(護國)공예로서 이를 잘 연구하고 계승시키는 일에 전념할 각오로 오늘도 열심히 작품에 혼을 쏟고 있다.
최혜빈 기자 chb0508@hanmail.net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스포츠닷컴&추적사건25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