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 서로 연대하고 이끌어줘야", "티베트 불교는 여러 얼굴 가진 다이아몬드"
(서울=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여성들 자신이 리더가 되기보다는 남성 지도자들을 따르고 지시를 받는 일이 더 많은 걸 보면 안타깝습니다."
세계 불교계의 대표적 비구니로 꼽히는 텐진 팔모(70) 스님은 종교 못지않게 여성 문제에 강한 애착과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다.
7일 서울 종로의 숙소에서 만난 텐진 팔모 스님은 "여성들은 충분히 스스로 리더가 될 수 있다"면서 "자신의 자존감과 가치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창립된 세계불교여성협회 한국지부인 샤카디타 코리아 초청으로 방한했다.
그는 여성의 인권과 사회적 위상과 관련해 "예전보다는 많이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면서 "진짜 문제는 남성들이 아니라 여성들 자신이다"라고 지적했다.
동양과 서양, 기업과 학계 가릴 것 없이 여성들이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고 도와주지 않는 태도가 여성의 지위 향상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여성들이 서로 연대하지 않고 스스로를 끌어내리는 건 슬픈 현실입니다. 여성들이 깨어나서 서로의 손을 잡아주고 재능을 발굴해주고 용기를 북돋워줘야 합니다."
여성의 지위와 역할이 더 커지면 종교가 좀 더 깨끗해지지 않겠느냐고 묻자 "여성 성직자들이 부패와 스캔들에서 남성들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건 맞다"면서 가톨릭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를 풍자한 만화를 예로 들었다.
추기경들이 깨끗한 사람을 교황으로 뽑자는 논의를 하는 자리에서 나온 결론이 수녀였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세상의 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침묵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무슨 대단한 자리를 차지하자는 게 아닙니다. 적어도 남성들과 대등하게 이 세상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죠."
영국 출신인 텐진 팔모 스님은 어려서부터 영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열여덟 살에 도서관에서 읽은 불교서적에 감명을 받아 인도로 건너가 티베트 불교에 귀의했다.
티베트의 영적 스승 캄트롤 린포체의 유일한 여성 제자가 됐고, 히말라야 설산의 작은 동굴에서 혹독한 추위와 싸워가며 하루 3시간만 자면서 독거수행을 12년이나 했다. 극도로 고통스러웠을 텐데 무엇을 얻었을까.
"아무것도 없어요. 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수행을 위한 완벽한 기회였어요. 아래 마을에 사는 착한 사람들 덕분에 혼자만의 시간, 격리, 안전이라는 수행의 필수요건을 모두 가질 수 있었으니까요."
영국 소녀 '다이안 페리'를 승려로 만든 티베트 불교의 매력은 무엇일까.
"티베트 불교에는 감성과 철학이 모두 녹아 있습니다. 명상수행과 고도로 심오한 불교철학, 자비와 감성, 헌신 등 아주 풍요로운 모습을 가졌죠. 다양한 얼굴을 가진 다이아몬드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또 12세기에 전래된 인도불교의 역사도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는 북인도 지역에 티베트와 히말라야 지역의 여성 수행자 교육을 위한 사원을 세워 비구니 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앞으로의 목표와 계획도 오로지 교육이다.
"젊은 비구니들은 미래이자 희망입니다. 여승들이 맥을 잇지 못했다면 불교가 지금처럼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젊은 세대의 잠재력을 찾아내고 그들의 능력을 키워주는 일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불교가 젊은이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는 현실에는 "절에 가서 향 피우고 절하는 게 불교가 아니다. 행복과 슬픔의 근원인 마음을 다스리고 훈련하는 게 진짜 불교다. 물질의 풍요나 세상 일의 성공이 결코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1/07 11:13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