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믿음은 욕망과 함께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다.
그래서 종교와 신앙은 그것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생을 지배하는 힘이 된다.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경전의 글귀 한 줄, 목자의 말 한 마디가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는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는 위력을 지닌다. 믿음의 맹목성이 커질수록 무서운 결과가 초래되는 이유다.
그런데, 그 믿음의 대상이 '가짜'라면 어떨까. 비슷하지만 진짜가 아닌 '사이비'는 종교와 함께 짝을 이룰 때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한다.
애니메이션 영화 '사이비'는 이런 인간 믿음의 허상과 위험성을 날카롭게 꼬집은 작품이다. 해외 배급용 영어 제목은 '더 페이크'(The Fake; 가짜)다.
장편 데뷔작 '돼지의 왕'으로 한국 애니메이션의 새 지평을 연 연상호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이다. '돼지의 왕'을 재미있게 본 관객이라면 다시 만족할 만한 작품이다.
실사 영화로 만들어져도 좋았을 만큼 인물들간의 팽팽한 갈등 구조와 캐릭터들의 다층성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끌고간다. 작품이 담고 있는 철학적인 고민도 간단치 않다.
이야기의 배경은 댐 건설에 따른 수몰예정지역인 작은 시골 마을.
이주 보상금을 받긴 했지만, 고향의 삶의 터전을 잃고 불안하게 흔들리는 마을 사람들 앞에 젊은 목사가 나타난다. 자신을 장로라고 소개하는 남자 최경석(권해효 목소리 연기)은 목사 성철우(오정세)에게 새 교회를 지어주겠다며 마을 사람들이 헌금을 하도록 유도하게 한다. 철우의 기도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점점 목사에 대한 칭송이 꼬리를 물며 마을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이런 가운데 마을사람들이 기피하는 인물 김민철(양익준)이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다. 민철은 집에 오자마자 딸 영선(박희본)이 대학 등록금으로 마련해 놓은 통장을 들고 가 노름으로 써버린다. 민철은 돈을 돌려달라는 딸에게 발길질로 갚음한다.
민철은 시내 술집에서 우연히 마주친 경석과 시비가 붙는데, 경석이 자신을 때리고 떠나자 앙심을 품는다. 술집 주인 손에 끌려간 파출소에서 수배 전단에 경석의 얼굴이 사기범으로 올라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찰들에게 얘기하지만, 술집 주인과 경찰들은 모두 민철을 술주정뱅이로 취급하며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이어 마을로 돌아와 교회에서 경석이 장로 행세를 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에게 가짜라고 소리치지만, 역시 아무도 믿지 않는다. 오히려 그를 말리는 딸을 때리는 민철을 보고 사탄에 씌였다며 손가락질하고 민철에게 자신의 뺨을 내미는 목사를 더욱 추앙하게 된다. 이후 민철과 경석의 대립각은 더욱 커진다.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목사인 철우다. 철우는 처음에는 사기꾼인 경석에게 이용당하는 듯하지만, 숨기고 있던 과거의 잘못이 드러나면서 위기에 몰리자 점점 복잡한 성격을 내보인다. 인간의 마음 속에는 선과 악 사이의 드넓은 스펙트럼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영화는 또 민철과 영선 부녀의 삶을 관통하는 비극을 통해 인간 운명의 본질에 관해 묻는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아름다운 문구 앞에서 영화는 조금의 희망도 보여주지 않는다. 각자의 삶은 그저 '팔자'라는 민철의 결론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스산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올해 시체스국제영화제에서 애니메이션 최우수작품상을 받았으며 토론토국제영화제와 미국의 AFI영화제에도 초청됐다.
21일 개봉. 상영시간 100분. 청소년관람불가.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1/06 16:33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