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자금성, 최후의 환관들'
(서울=연합뉴스) 김영현 기자 = 청나라 서태후의 아들인 황제 동치제는 천연두로 요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태후는 늙어서도 머리가 검었다. 69세에 찍은 사진을 보면 가르마를 따라 양쪽으로 가지런히 빗은 머리가 칠흑 같았다.
일각에는 서태후의 머리가 '듬성듬성한 대머리'에 가까웠다는 기록도 있다. 동치제의 사인에 대한 논란도 있다.
평생 이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환관들의 증언을 빌리면 '진실'에 더 생생하게 다가갈 수 있다.
"태후의 머리는 늘 빗기가 어려웠다. 40세 이후에는 벌써 탈모가 오기 시작해 귀밑가와 뒷머리에만 짧은 머리털이 남아 있었다. 정교하게 장식해놓지 않으면 영락없이 머리가 듬성듬성한 노부인이었다. 위엄있는 모습을 좋아했던 태후는 정수리에 붉은 점토로 가짜 머리카락을 붙였고, 머리 양쪽으로 머릿단을 붙였다."(116쪽)
동치제의 사인도 실제로는 화류 관련 병이었다고 한다. 날마다 궁 밖 창기의 집을 드나들며 향략을 즐기다가 몹쓸 병에 걸린 것. 그러나 어의는 사실을 고하지 못하고 천연두에 걸렸다고 했고, 엉뚱한 처방이 이뤄진 끝에 동치제는 목숨을 잃었다.
최근 국내 번역된 '자금성, 최후의 환관들'은 이처럼 은밀한 청나라 궁의 내부 모습을 눈앞에서 보듯 생동감 있게 그려낸 책이다. 지속적으로 황실 주요 인물과 접하지 않으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묘사와 설명으로 가득하다.
'자금성…'은 청나라 마지막 태감(太監·명청 시대 환관의 우두머리를 일컫는 말로 책에서는 환관 대신 태감이라고 칭함) 신슈밍(信修明)이 젊은 시절 25년간 직접 겪고 보고 들은 황실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담았다.
신슈밍은 서태후, 융유태후, 단강태비 등 세 명의 주인을 차례로 모셨으며, 1924년 '마지막 황제' 푸이가 자금성에서 강제로 쫓겨날 때 단강태비의 영구를 모시고 함께 나왔다.
책 분량의 대부분인 1부 '궁중의 숨겨진 이야기들'에 신슈밍의 이야기가 담겼다.
신슈밍이 출궁 뒤 포충호국사 주지승을 맡으면서 일기로 남긴 자료를 정리했다.
2부 '거세에서 풍찬노숙까지, 태감의 굴국 많은 삶'에서는 마더칭 등 14명의 태감이 자금성의 사생활과 태감의 한 많은 삶을 회고하며, 3부 '즉문즉답: 청 황실을 말하다'에는 서태후의 궁전인 영수궁에서 일한 태감 겅진시와의 인터뷰가 담겼다.
신슈밍은 10년간 유학을 공부한 유생 출신이라는 점에서 다른 태감과 구분된다.
그는 승급과 돈에 눈이 먼 다른 태감과 달리 교만하지 않았고 관찰력이 뛰어났다. 친화력을 타고나 황궁의 비사를 누구보다 많이 알게 됐다.
덕분에 책은 궁녀의 내밀한 시각이 담긴 '서태후와 궁녀들' 같은 류와 달리 청대 태감 제도의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자금성의 일상은 물론 태감 제도의 유래, 태감 조직의 체계와 직무, 녹봉, 품성까지 일일이 열거한다.
책에 따르면 청대 내정 태감들은 1천여 명에 달했다. 상전을 가까이 모시는 상, 태후 같은 여주인을 모시는 하, 선(주방), 사(사방, 사무총괄처), 전(궁과 전 관리) 등이다.
서태후가 황족과 대신 및 외국 사절과의 연회 때 올릴 연극을 준비하기 위해 마련한 극단 '보천동경반'도 있다. 신슈밍이 몸담았던 곳이다.
책은 '음식을 절제해서 먹여야 한다'는 소아과 어의의 말에 따라 허기가 질 정도로 어린 황제의 음식을 엄격하게 관리한 일, 나이 든 태감에게 자신의 대소변을 강제로 먹여 죽게 한 서태후가 정작 자신은 사람의 젖을 먹은 일화, 고작 해마다 400만 위안을 받기로 하고 위안스카이 일파에 '대청제국'을 내준 융유태후 등의 이야기도 시선을 끈다.
또 신슈밍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피맺힌 고통과 한을 드러낸다.
그는 "나는 과거에 한 세월을 겪은 사람이다. 과거를 위해, 현재를 위해, 미래를 위해 날마다 아미타불을 3천 번 암송한다"며 "이 생에는 사람다운 삶을 살지 못했지만 다가올 생애에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한다"고 절규했다.
주수련 옮김. 글항아리. 476쪽. 1만9천원.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1/05 07:0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