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철주 학고재 주간 '사람 보는 눈' 펴내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조선 영조 때 좌의정에 오른 송인명(宋寅明). 그의 초상화를 보면 검붉은 입술 사이로 툭 튀어나온 앞니 두 개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고관대작의 초상을 그리면서 뻐드렁니까지 그리다니.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미술 평론가인 손철주 학고재 주간은 오히려 이 초상화의 백미를 이 뻐드렁니에서 찾는다. 손 주간은 뻐드렁니에서 저항하기 어려운 포용력을 읽어낸다. 송인명의 품성을 묘사하기 위한 절묘한 장치가 바로 뻐드렁니라는 것이다.
손 주간이 최근 펴낸 '사람 보는 눈'에는 모두 85편의 그림이 실렸다. 그중 70여 편이 인물화다. 그는 인물화 속 터럭 하나에서까지 그 사람의 정신을 읽어낸다.
"조선의 초상화는 '전신(傳神)기법'을 큰 자랑으로 삼는다. '정신을 전달한다'는 얘기다. 모델의 정신까지 화면에 살려내는 이 기법은 눈동자 묘사에 성패가 달려 있다.
'눈은 정신을 빛내고 입은 감정을 말한다'고 했다."(64쪽)
초상화는 서양 것이 더 좋다는 사람들이 많다. 인물을 닮게 그리는 솜씨, 휘황찬란한 복색, 풍성한 색채의 유화는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우리 초상화는 어떤가. 색은 칠한 듯 만 듯 붓질도 듬성듬성하고 게다가 작은 종이나 천에 그려 서양의 초상화와 같은 압도적인 위용이 없다.
그렇다면, 비교우위는 어디에 있는가. 손 주간은 '얼굴을 통해 정신을 그리는' 방식에 있다고 말한다.
'송인명 초상'의 뻐드렁니에서 포용력을 읽어낸 손 주간은 '이하응 초상'에서 칼집에서 뺀 칼에서 대원군의 서슬을 읽거나 '심득경 초상'의 붉은 입술에서 그린 이의 애통함을 읽고 '정몽주 초상'에서는 사마귀를 통해 인물의 체취를 붙든다.
그림 속 옛 사람의 풍모를 쏙 잡아채는 손 주간의 안목이 돋보이는 저작이다. 덩달아 독자들의 그림 읽는 법을 밝혀줄 만한 책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누구나 쓸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이 책의 빼어난 재미는 손 주간의 예스럽되 감각이 살아 있는 문장에서 비롯된다. 문장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현암사. 284쪽. 1만5천원.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1/03 11:12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