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5년 전 인디밴드였던 장기하와얼굴들은 '싸구려 커피'란 노래로 돈 없고 갈 곳 없는 청춘들의 무기력한 일상을 그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배경이나 돈이 없고 열심히 일해도 최저 시급을 받고 근근이 삶을 꾸려가며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20대 젊은이들을 지칭하는 사회학적 용어로 '88만원 세대'가 고유명사가 된 지 오래. 장밋빛 꿈은커녕 현재의 노동 의욕조차 상실한 젊은이들은 반지하 방에 틀어박혀 흘러가는 시간을 부유한다.
이들의 일상을 포착해 속 쓰린 싸구려 커피와 눅눅한 비닐장판의 슬픔을 노래로 담은 '싸구려 커피'는 젊은이들의 열렬한 공감과 지지를 얻었다.
그에 비하면 대중문화의 한 축인 영화는 그동안 이 세대를 제대로 조명해내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 나온 독립영화 '잉투기'는 단연 눈에 띄는 영화다. 스스로 '잉여'로 자조하면서 '잉여 짓'에 목숨을 거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내면을 들여다본 영화다.
그동안 한국영화가 채 담아내지 못한 시대의 이야기를 젊은 감독 엄태화는 재기발랄하면서도 가볍지 않게 그려냈다.
온라인 게임 아이템을 거액의 현금을 들여 거래하고, 사이버 게시판에서 댓글로 서로 공격하다 실제로 만나 주먹다짐을 하거나 칼부림을 하는 이들의 기사는 심심찮게 뉴스 사회면을 장식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성 세대들은 그저 혀를 차거나 고개를 흔들며 외면하고 만다.
영화 '잉투기'는 이들의 분노가 어디에서 오는지 탐구하고 이들이 세상 밖으로 에너지를 쏟아내는 이야기를 통해 조심스럽게 희망을 말한다.
영화 제목 '잉투기'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격투기 대회 이름이다. '잉여'들의 격투기이면서 현재 진행형을 의미하는 'ING'에 '투기'를 결합해 '싸우고 있다'는 뜻을 나타낸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칡콩팥'이란 아이디로 활동하는 태식(엄태구 분)은 같은 커뮤니티에서 사사건건 부딪히며 대립하던 '젖존슨'에게 '현피'로 급습을 당한다. '현피'란 온라인에서 벌어진 싸움이 현실로 옮겨진 것을 말한다.
젖존슨에게 무참히 맞는 장면이 동영상으로 찍혀 인터넷상에서 웃음거리가 되자 태식은 이를 참을 수 없는 치욕으로 여긴다. 복수를 다짐하고 젖존슨을 추적하다가 젖존슨이 과거에 종합격투기 대회인 '잉투기'에 나갔던 사실을 알게 되고 친한 형 희준(권율)과 함께 격투기 체육관을 찾아간다.
체육관 격투기 사범의 조카인 여고생 영자(류혜영)는 태식이 칡콩팥이란 사실을 알고는 재미를 느껴 젖존슨과 싸움을 붙일 목적으로 젖존슨 추적에 함께 나선다. 부모 없이 혼자 사는 영자는 격투기 챔피언 수준의 실력을 지녔지만, 학교에서 아이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오로지 온라인상에서 개인 방송을 하며 익명의 상대들과 소통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사는 인물이다.
태식과 영자는 점점 젖존슨의 실체에 접근하지만, 상황은 이들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영화는 처음에 '이해 불가'의 외계 존재로 보이는 태식과 영자란 인물을 점점 피와 살과 영혼을 지닌 사람으로 보게 한다. 주먹을 날릴 대상조차 없어져 좌절하는 태식과 고작 해야 소심한 복수로 울분을 터뜨리는 영자의 초상은 결국 관객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11월 14일 개봉. 상영시간 98분. 상영등급 미정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0/30 07:01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