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4월 시작해 매월 낭독회…11월7일 기념행사
창립멤버 구상·성찬경·박희진 헌신에 모임 지속 유지
(서울=연합뉴스) 백나리 기자 = 1979년 4월7일 서울 종로구 원서동 소극장 '공간사랑'에서 자그마한 시 낭독회가 열렸다. 구상, 성찬경, 박희진 시인이 무대에 올라 각자 열 편 정도의 자작시를 읽었다.
입장료 500원을 낸 청중 150명 정도는 조용히 앉아 시 낭송을 들었다. 신발주머니에 신발을 넣고 들어가야 하는 불편함도 마다하지 않았다.
낭독회는 다음 달에도, 그다음 달에도 열렸다. 그렇게 시작한 시낭송 모임 '공간시낭독회'는 34년간 중단 없이 이어졌다. 1988년 10월 100회, 1997년 2월 200회를 각각 맞았고 2005년 8월 300회를 넘어 11월 모임으로 400회를 맞게 됐다.
시낭독 모임에 '공간'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 낭독회가 열리는 장소 때문이었다. 구상 시인과 친했던 건축가 김수근 씨가 직접 설계해 건축사무소로 사용하던 '공간'의 지하 소극장을 선뜻 내줬다.
낭독회 때마다 학생과 주부, 화가, 군인, 교수, 승려 등 100명 내외의 다양한 청중이 모였다. 한때는 극장 밖까지 늘어선 청중을 위해 확성기를 설치해야 했을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1986년 김수근 씨의 타계로 '공간시낭독회'도 장소를 옮겼다. 동숭동 예술관과 원서동 극장 등 몇 군데를 다니다 올해 3월부터는 원서동 바움아트갤러리로 옮겼다. 초창기 낭독회의 추억이 어린 공간 사옥 바로 옆이다.
시인 셋이 의기투합해 시작한 모임은 34년간 꾸준히 지속됐다. 지금도 매월 첫 번째 주 목요일 오후 6시에 어김없이 시인들이 모여 각자 써온 시를 낭독한다.
그동안 낭독회에는 시인 수백 명이 다녀갔다. 8년 전 300회를 맞았을 때까지 센 것만 700명이 넘는다. 현재 회장을 맡은 이인평 시인은 "안 다녀간 시인이 없을 정도로 김종길·김남조·홍윤숙 등 원로 시인들은 한 번씩은 다 다녀갔다"고 말했다.
1980년대 '공간시낭독회'와 더불어 전국 곳곳에 시 낭독회가 생겨났지만 대체로 오래가지 못했다. '공간시낭독회'가 34년이라는 긴 시간 꾸준히 모임을 지속한 데는 창립멤버 3명의 헌신이 컸다. 2004년 구상 시인이 먼저 세상을 떠난 뒤에는 나머지 두 멤버가 모임을 지켰고 올해 향년 83세로 별세한 성찬경 시인도 세상을 떠나기 20여일 전에 열린 2월 모임에 참석했을 정도로 낭독회에 애정을 쏟았다.
이제 창립멤버 중 박희진 시인 혼자 남았다. 올해 82세인 박 시인은 거동이 아주 편치는 않지만 꼬박꼬박 모임을 챙기고 있다. 시인은 400회를 맞아 "'공간시낭독회'는 시를 배우고 나누고 연마해 순금의 얼개를 얻고자 하는 시의, 정신의 연금술사들이 모인 수도장"이라며 "400회가 말은 쉽지만 생각하면 기적과도 같은, 꿈 같은 일"이라는 소회를 내놨다.
400회째인 11월 모임은 7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예장동 '문학의 집 서울'에서 열린다. 회원들과 초대 시인들이 시를 낭독하고 안숙선 명창과 대금연주자 송성묵 씨 등이 축하공연을 한다.
올해 2월 성찬경 시인이 별세한 뒤 마련된 '공간시낭독회' 추모 낭독회에서 회고담을 나누는 박희진 시인. <공간시낭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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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 사화집도 나왔다. '우리는 출렁인다'라는 제목으로 구상·성찬경·박희진 시인을 포함한 낭독회 회원들의 작품을 싣고 황금찬·김후란·이근배·최동호·신달자 시인 등의 작품도 함께 담았다.
400회라는 진기록 앞에서 회원들에게 한 가지 안타까움이 있다면 성찬경 시인의 갑작스러운 별세다. 이인평 회장은 "선생님이 400회 행사를 매우 기대하셨는데 함께 하지 못하게 돼 너무 아쉽다"고 했다.
이 회장은 "물질 위주의 사회에서 우리의 정신이 피곤해질 수밖에 없는데 아름다운 시를 통해 정신과 정서를 밝게 이끌어 갈 원동력을 얻을 수 있다"며 "우리 삶을 윤택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시읽기에 많은 분이 동참하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놨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0/24 08:53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