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이름에는 차의 기능과 성능이 들어있다
'레인지 로버 5.0 Super Charged Autobiography Black LWB' , '메르세데스-벤츠 CLS 250 BlueTEC 4MATIC Shooting Brake', '폭스바겐 Touareg V6 3.0 TDI BMT Premium'. 한국수입차협회에 등록된 518개 수입차 중 모델명이 가장 긴 차들이다. 뜻이 뭔지 직원에게 물으면 자신도 "찾아보고 알려주겠다"는 답이다. 이쯤되면 '암호문'이다. 자동차 모델명은 차량의 기술과 성능을 드러내는 표지다. 엔진과 배기량, 차급, 구동방식, 사양기술 등이 암호처럼 망라돼 있다. 자동차 기술의 발전과 진화 정도에 비례해 차량 모델명은 점점 더 길어지는 추세다.
특히 수입차 시장이 커지면서 국내에도 '난독증'을 일으키는 차명이 부쩍 늘었다. 자동차 브랜드마다 제각각이지만 차의 작명법에도 나름의 '원칙'은 있다. 알아두면 성능과 제원을 파악하기 쉽다. '레인지로버 5.0 슈퍼차지드 오토바이오그래피 블랙 롱휠베이스'를 보자. 레인지로버라는 차명 뒤에 붙는 5.0은 배기량(5000cc)을 뜻한다. 그 다음은 'V8(8기통) 슈퍼차저' 엔진을 달았다는 의미다. '오토바이오그래피 블랙'은 레인지로버 최상위 트림을 말한다. 롱휠베이스는 차량이 기본모델보다 길다는 뜻이다. 풀네임 모델명은 통상 '차명+차급+배기량(성능)+엔진' 정보를 골격으로 세부트림의 특성들을 잇는 형태로 확장된다.
수입차 중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BMW는 세단 모델의 차명을 차급에 따라 숫자(3·5·7시리즈)로 구분한다. 그 뒤에 바로 두 자리 숫자 표기로 배기량 정보를 붙인다. 'BMW 320d GT xDrive'는 '준중형(3시리즈)+배기량 2000cc(20)+디젤엔진(d)+레저용 그란투리스모(GT)+4륜구동(xDrive)'이란 뜻을 포함한다. 숫자 뒤에 'd'가 아닌 'i'가 붙어 있다면 디젤이 아닌 가솔린 차다. BMW의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는 4륜구동을 뜻하는 'X'에 '1~6'까지 숫자를 붙여 차급을 구분한다.
벤츠는 'C(Compact)', 'E(Executive)', 'S(Super Salon)'로 승용 세단의 차급을 나누고 뒤에 숫자를 붙인다. 숫자는 배기량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아닌 경우가 더 많다. 벤츠 'E 250 BlueTEC 4MATIC AV'란 이름의 차는 '중형(E클래스)+엔진 성능(250)+디젤(블루텍)+별모양의 대형 엠블럼(아방가르드)'을 나타낸다. 아우디의 경우 승용 세단은 'A(A1~A8)', SUV는 'Q(Q3·Q5·Q7)'로 모델명을 구분한다. 숫자가 높을 수록 크고 고급스러운 차다. 모델명 뒤에 붙는 숫자 2개는 배기량이 아닌 가속성능이다. 'A6 50 TDI quattro'는 '중형(A6)+가속성능(50)+터보디젤 직분사엔진(TDI)+4륜구동(콰트로)'이란 차량 정보를 담고 있다. BMW 차량에 'M'이, 벤츠에 'AMG', 아우디에 'S'가 붙어 있다면 고성능 모델이다.
스포츠카의 대명사 포르쉐 '911 Carrera 4 Black Edition Cabriolet'의 '911 카레라'는 차량 고유 모델이름이다. 숫자 4는 사륜구동을 말하고 카브리올레는 '컨버터블'과 같은 뜻으로 유럽식 오픈카를 표현한다. 블랙 에디션은 블랙 컬러를 적용한 스페셜 에디션이란 뜻이다. 국내에선 기아자동차가 세단 모델에 영문 시리즈 모델명을 채용했다. 'K3·K5·K7·K9'이 그렇다. 최근 새로 나온 신형 'K7 2.4 GDI'는 2400cc급 배기량의 GDI 가솔린 직분사 엔진을 단 차량이라는 의미다.
국산차는 수입차만큼 이름표가 복잡하지는 않다. 차량의 고유 이름은 차의 특성에 따라 작명되는 경우가 많다. 국산차를 예로들면 레저용 차량인 SUV에는 관광 지명이, 고급 승용차에는 날랜 동물 이름이 많이 붙는다. 현대차 싼타페, 투싼, 베라크루즈, 기아차 쏘렌토, 쌍용차 티볼리 등의 SUV 차명은 모두 유명 관광지에서 따왔다. 준대형 고급세단인 현대차 '아슬란(터키어 사자)'과 한국GM의 '임팔라'는 동물 이름이다.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등 최신 기술이 적용된 친환경차에는 이미지 연상 작용을 활용한 작명법이 유행이다. 현대차 '아이오닉(IONIQ)'은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낸다는 뜻을 가진 '이온(ION)'과 브랜드 독창성을 뜻하는 '유니크(UNIQUE)'를 조합해 탄생했다. 기아차 '니로(NIRO)'도 극대화된 기술력을 연상시키는 '니어 제로(Near Zero·무결점 지향)'와 SUV의 강화된 위상을 상징하는 '히어로(Hero·영웅)'의 합성어다.
유규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