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선작가동맹’ 출신 소설가 김유경의 두 번째 장편소설
-극한의 폭력 앞에 무기력하게 노출된 인간이 어떻게 무너지는가
-이념을 넘어 ‘인간’의 삶 그 자체를 조명한다
(사진제공: 카멜북스)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 이들
평양에서 명문대를 졸업하고 최고의 신문사에 배치받은 젊은 기자 원호, 국립교향악단의 가야금 연주자로 활동하던 그의 아내 수련. 어느 날 찾아온 보위원들은 이들을 짐짝처럼 차에 싣고는 깊은 산골로 들어간다. 한참을 달린 후에 차에서 내린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 정치범수용소,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는 나올 수 없는 곳이다. 원호와 수련은 평양 보위부에서 좌천된 민규의 1작업반에 배치되고 오랜 기간 짝사랑하던 수련을 발견한 민규는 충격과 함께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보위원과 수인이라는 관계 속에서 민규는 점차 삐뚤어진 욕망에 휩싸이기 시작하고 원호는 둘 사이의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다.
◇체제의 폭력 앞에 각기 다른 모습으로 무너지는 인간
정치범수용소의 수인들에게 할당되는 노동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수준이다. 여기에 짐승에게도 가해지지 않는 수준의 육체적·정신적 학대가 이어지면 어느새 수인들은 “멍청한 표정에 짐승 같은 촉각만을 가진 ‘수용소의 사람’을 뱉어낸다.” 그러나 폭력은 그것을 휘두르는 이에게도 깊은 자상을 남기고, 보위원들 역시 또 다른 ‘수용소의 사람’으로 변해 간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무너지는 원호와 수련, 민규의 모습에서 우리는 체제가 가하는 ‘인간모독(人間冒瀆)’을 목격한다.
삐뚤어진 분노와 욕망, 뒤틀린 감정들에 의해 조각나 버린 이들의 인간성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쉽사리 돌아오지 않는다. 인간 상상의 끝을 넘어선 지옥에서 가까스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 이들에게 여전히 드리워진 그림자. 그 그림자를 벗어나려 애쓰는 이들을 보며 체제가 가하는 폭력과 그에 맞서는 개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북한의 체제가 아닌 그 속의 ‘개인’을 이야기하다
김유경 작가는 단순히 북한 체제의 실상을 고발하고 탈북민들이 겪었던 어려움을 호소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북한의 현실은 ‘오늘날 인간이 마주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환경 중 하나’로서 철저하게 배경으로만 작용한다. 그리고 전작 ‘청춘연가’에서도 그러했듯, 작가는 그 가운데서 살아가는 ‘인간’을 조명한다. 그렇기에 ‘인간모독소’의 인물들은 ‘보위원’과 ‘수인’이라는 제한된 역할 속에서도 다채로운 군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스쳐 지나가듯 잠시 등장하는 인물들도 현실과 맞서는 자신만의 모습을 그려낸다.
철저하게 단절된 공간인 북한 정치범수용소를 배경으로 하는 ‘인간모독소’가 탈북민의 아픔을 그려내는 것을 넘어 문학으로서 오늘날 우리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여기에 있다. 크고 작은 체제의 폭력 아래에서 부서지고 있는 또 다른 원호, 수련, 민규가 바로 우리 곁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유경 지음 / 카멜북스 / 404쪽 / 13,000원
카멜북스 개요
카멜북스는 ‘끝없는 사막 한가운데서도 오랫동안 살아갈 수 있는 생명력’과 ‘그 누구도 찾지 못하는 오아시스를 찾아내는 감각’을 뜻한다. 카멜북스는 시대의 흐름에 앞서 가는 젊은 감각과 열린 사고를 통해 인류가 가진 무한한 지성의 세계를 책 속에 담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작가들의 새로운 도전과 실험 정신에 주목하여, 무한한 지식의 세계를 끊임없이 탐색하여 다양한 분야의 도서를 기획 개척해나가 생명력과 감각의 정신으로 21세기 출판의 선도자로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