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장편소설 '나비잠' 출간
(서울=연합뉴스) 백나리 기자 = 소설가 최제훈(40)의 새 장편 '나비잠'은 딱 한 사람, 최요섭 변호사의 심사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최 변호사는 명색이 법조인이지만 이해관계의 첨예한 교차를 불법으로라도 돌파하면서 제 영역을 사수하는 인물이다.
잘 나가는 로펌 소속 변호사지만 그의 일은 협잡 수준이다. "스카이 법대 출신도 아니고 재조경력도 미국 로스쿨 학위도 없는, 거구에 털만 수북한"(48쪽) 최 변호사에게 적자생존이 최우선일 뿐 원칙이나 도리 같은 건 안중에 없다.
이런 최 변호사가 어느 날 노란 티셔츠를 입은 여자아이에게 이끌려 얼결에 선의를 베푼다. 그의 선의에 세상이 작은 보답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이 일을 첫 단추로 그의 삶이 꼬이기 시작한다.
이제부터는 몰락으로 가는 직진 코스다. 그동안 깔아놓은 업보가 많아 회생은 이미 틀렸다. 그런데 이 직진 코스를 작가는 지그재그로 간다. 한 장은 현실에, 그다음 장은 꿈에 공평하게 할애하면서 작가는 최 변호사라는 인간의 복잡한 심리 변화를 꼼꼼하게 추적한다.
꿈에서 최 변호사는 계속해서 죽음과 추격의 위기에 몰린다. 여자 아이가 입었던 노란 티셔츠를 실마리로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비밀의 기억이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아기가 두 팔을 벌리고 자는 잠을 뜻하는 제목 '나비잠'의 평온한 느낌은 한 번도 없다. 현실의 불안과 공포가 왜곡되고 확대된 형태로 끊임없이 꿈속에 출몰해 현실로 되돌아온다.
꿈과 현실을 오가는 지그재그의 서술로 한 인간의 삶에서 벌어지는 일을 세밀하고 다면적으로 묘사하는 게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다. 제 몫만 바라보고 사는 인간의 잔머리 팽팽 도는 삶은 사실 주변에 널렸다. 그러나 이런 인간이 겉으로 드러나는 삶 뒤쪽에서 벌이는 개인적인 전투를 꿈의 적극적인 활용으로 파고드는 작가의 방식이 인물에 특별한 생기를 불어넣는다.
현실과 꿈의 침투에 대한 형용하기 어려운 경험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것이어서 이 생기가 더욱 생생하다. 돼지꿈을 꾸고 로또를 사는 것 같은 아주 단순한 경험에서부터 잊고 있었던, 혹은 한사코 잊으려 했던 기억과 불안이 꿈에서 변형된 모습으로 등장해 현실을 침범하는 경험까지 소설을 읽는 과정에 불쑥불쑥 되살아난다.
최 변호사의 꿈과 현실이 서로 파고들다가 포개지는 지점에서 유년의 끔찍한 비밀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유년의 트라우마에 모든 원인을 돌리는 간단한 길을 택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31년 전의 어린 최요섭이나 지금의 최요섭이나 이해관계의 교차로 발생하는 갈등의 상황에 본질적으로 같은 대응 방식을 택하는 인간이었음이 드러나면서 독자는 출구 없는 막막함에 직면하게 된다.
소설 앞부분에서 최 변호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사는 건 아닌 것 같다'는 후배 녀석의 취중 한탄에 "아무리 탈옥해봐야, 이 세상 자체가 감옥"(72쪽)이라고 소리친다. 작가는 속 편하게 세상 탓을 하던 최 변호사의 의식을 헤집어 세상을 감옥으로 만드는 인간의 밑바닥을 대면시킨다. 이 대면의 과정에 기묘한 섬뜩함이 있다.
문학과지성사. 372쪽. 1만 3천 원.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0/10 09:18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