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서 '초초상' 연기…"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컨디션 점점 좋아져"
"은퇴는 아직…언젠가 한국발레 위해 헌신할 것"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강수진의 나이는 46세. 현역으로 활동하는 발레리나 중 단연 최고령이다.
통상의 은퇴 시점을 넘겨도 한참 넘긴 그에게 가장 빈번하게 던져지는 질문은 "은퇴 시점은 언제"와 같은 것이다.
실례가 될까 머뭇머뭇 던지는 질문에 웃음을 띤 그가 내놓는 답변은 수년째 같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스스로도 이상하지만, 어제보다 오늘이 컨디션이 더 좋은데 어떻게 하나요."
"갈수록 컨디션이 좋아지는" 이 '이상한' 발레리나는 또 한 번 관객들의 예상을 유쾌하게 비켜간다. 오는 19일부터 오스트리아 티롤 국립극장에서 공연되는 인스브루크 발레단의 세계 초연작 '나비 부인'에 출연하는 것.
정상의 열매만을 따 먹을 수도 있는 시점이다. 검증이 끝난 안정적인 작품, 그간 자신을 가장 빛나게 한 작품에만 출연한다 해도 이 최고령 발레리나에게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시간과 품을 들여야 하는,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전막 발레 작품을 선택한 그의 행보는 분명히 눈길을 끈다.
공연을 앞두고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 체류 중인 강수진을 전화로 먼저 만났다. 그는 "당연히 부담이 되지만, 다른 작품과는 달리 강하게 날 잡아끄는 무엇인가가 있었다"며 출연 제의를 수락한 이유를 설명했다.
"가장 걱정됐던 것은 시간이었어요.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일정만으로도 너무 바쁜데 시간을 어떻게 더 쪼갤 수 있나 끔찍했죠. 그렇지만 이 작품은 어쩐지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또 단순하잖아요.(웃음) 일단 하겠다고 결정을 하고 나니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행됐어요. 쉬는 시간, 밥 먹는 시간을 쪼갰죠, 뭐."
이번 작품은 인스브루크 발레단의 예술감독이자 안무가인 엔리케 가사 발가(37)가 강수진을 위해 특별히 안무한 것이다.
오스트리아 안무가가 그에게 특별히 '나비부인'이라는 작품을 제안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발이 뭉개질 만큼의 혹독한 연습을 거쳐 우아하게 날갯짓하는 그에게 한국팬들이 붙여준 별명이 '강철나비'. 그의 한국 별명이 외국까지 소문이라도 난 걸까.
"그 별명을 아는 것 같진 않던데요. 하하. 이 작품의 시작은 안무가의 어머니예요. 어머니께서 13년 전쯤 스페인에서 열린 한 갈라 공연에서 제 춤을 우연히 보셨대요. 그리고 아들에게 말씀하셨죠. 저 발레리나는 나비부인에 딱 어울릴 것 같다고요. 그분이 제 춤을 본 것도 처음이었고, 당시 아들은 안무가도 아닌 무용수였는데도 그런 말씀을 하셨대요. 그리고 오랜 시간 뒤 그 말이 현실이 됐으니, 특별한 작품이죠."
발레 '나비부인'의 내용은 원작인 푸치니의 동명 오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 나가사키 항구를 배경으로 열다섯 살의 게이샤 초초상과 미국 해군장교 핑커톤의 비극적인 사랑을 다룬다. 핑커톤에게 버림받은 초초상은 결국 자결을 선택한다.
그는 "매우 드라마틱하고 강렬한 작품"이라며 "일단 제 마음에는 쏙 든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까멜리아 레이디', '오네긴', '로미오와 줄리엣' 등 배역에 완전히 몰입해야 하는 드라마 발레에서 가장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강수진이기에 이번 작품에 대한 기대감도 커진다.
신작 준비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는 그에게 은퇴 시점을 묻는 것은 무의미해보였다. 하지만 되풀이된 우문(愚問)에 그는 웃으며 "언젠가는 하긴 할텐데, 지금은 아닌 것 같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이렇게 말하는 게 이상한 거 잘 알지만, 젊은 시절보다 컨디션이 더 좋은 건 사실이에요. 저도 신기하고 놀라워요. 그래서 그냥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어요."
다만 그는 언젠가는 "한국 발레계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제가 안무 쪽에는 재능이 없고요. 예술감독 등은 맡을 수 있겠죠. 시기 등을 특정할 순 없지만, 한국 발레를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은 항상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애교스럽게 말을 잇는다.
"그런데 제가 내년 7월에는 한국에서 '나비부인' 선보일 예정이고, 2015년 11월에도 한국에서 슈투트가르트발레단과 함께 '오네긴'을 공연하기로 했거든요. 어쩌죠. 최소한 그때까지는 절 계속 무용수로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웃음)"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0/09 06:3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