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원 서울대 교수 '훈민정음' 펴내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한글은 우리 겨레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입니다."
우리가 '한글의 우수성'을 강조하고자 할 때 그 근거로 흔하게 내세우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과연 사실일까?
우리는 1997년에 한국의 문화재가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세계기록유산에 등록된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때 등록된 것은 추상적인 '한글'이 아니었다. 1997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기록유산으로 승인받은 것은 한글의 창제 원리와 운용 원리 등을 적은 책 형태의 기록물인 '훈민정음 해례본'이었다.
이것을 많은 사람이 '한글'이 등록된 것으로 오해해 '한글'에 대한 긍지를 높이는 잘못된 계기로 작용한 것이다.
한국인에게 한글은 단순히 한국어를 기록하는 문자 체계만은 아니다. 한글은 찬란했던 15세기 조선 문화의 상징이며, 민족적 자긍심의 원천이다.
소설 '대지'를 쓴 작가 펄 벅은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라고 극찬했다. 한글의 우수성은 세계의 언어학자들 대부분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글의 우수성만을 강조한 결과 많은 사람이 한글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른 채 막연하게 우수하다고만 알고 있거나 "한글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됐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
아직 인류는 세계의 모든 언어를 완벽하게 적을 수 있는 표기 체제를 개발하지 못했음에도 "한글로 지구 상의 모든 소리를 완벽하게 적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한글에 대한 강화된 자긍심이 낳은 산물이다.
김주원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가 최근 '훈민정음: 사진과 기록으로 읽는 한글의 역사'를 펴낸 것도 이러한 한글에 대한 오해와 신화를 해결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김 교수는 수십 년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훈민정음에 대한 근거 없는 주장과 과장들을 과감히 걷어내고 객관적인 한글 이야기를 책 속에 담았다.
여기에 52장의 사진과 풍부한 역사 기록들을 덧붙여 독자들이 직접 훈민정음을 둘러싼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한글에 대한 오해들은 우리가 훈민정음, 즉 한글의 여러 면모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 막연하게 그것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라고 알고 있어서 생겨난 것들이다."(23쪽)
본문 중간에 삽입된 '남은 이야기'도 이 책의 흥밋거리 가운데 하나다.
"언문은 정말 한글을 낮춰 부르는 이름일까?"라는 도발적인 질문부터 현대 언어 열풍을 능가하는 조선시대 중국어 학습 열풍, 로마자를 처음 접한 조선인 이야기, 한글로 표기돼 중국 문헌에 실린 허균의 시, 정인지와 양성지 등 훈민정음 창제의 숨은 주역들의 뒷이야기까지 다채롭게 구성돼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다음 달 9일 제567돌 한글날을 앞두고 읽어두면 좋을 책이다.
민음사. 296쪽. 1만8천원.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9/30 11:27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