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아이오와대 국제창작프로그램 책임자 크리스토퍼 메릴 인터뷰
(서울=연합뉴스) 백나리 기자 = 미국 아이오와대 국제창작프로그램(IWP)의 책임자이자 시인인 크리스토퍼 메릴(56)은 한국작가들의 문학적 역량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 노벨문학상 수상에 너무 연연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내달 1일부터 나흘간 단국대와 수원시 주최로 열리는 세계작가 페스티벌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메릴은 지난 28일 저녁 서울 서대문구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IWP에 한국 작가들이 많이 오는데 기본적인 문학적 역량이 뛰어나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 세계 작가들이 3개월간 체류하며 작품을 발표하고 교류할 기회를 갖는 IWP는 1967년 시작돼 지금까지 120여 개국에서 1천200여 명의 작가가 다녀갔다.
한국에서도 1970년 황동규 시인을 시작으로 정현종·황지우·최승자·나희덕, 소설가 최인훈·김영하·한강 등 다수 작가가 참여했다.
메릴은 "20년 전과 비교해 해외에서 '한국 문학'에 대한 일반의 의식이 많이 생겨났다"고 평했다. 그는 "해외의 독자들이 좋은 번역작품을 통해 그 나라에 대한 더 큰 이해를 갖게 된다"면서 한국문학에 좋은 번역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IWP 책임자로 한국과의 인연이 깊다. 한국 작품을 종종 접하고 있나.
▲ 최근 송찬호 시인의 시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번역을 마쳤고 미국 출판을 기다리고 있다. 단순 명료해 보이는 시지만 세계의 복합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 그동안 황지우와 나희덕, 문태준 시인 등의 작품 6권을 번역했다.
-- 한국 작가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특징이 있다면.
▲ 세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명확한 철학이 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유머나 위트가 두드러진다. 일상적인 것들 속에서 실체를 발견해내는 시선이 좋다.
- 노벨문학상 발표 시점이 다가온다. 노벨문학상 수상이 그 나라 문학 수준의 지표는 아니겠지만 한국에서는 일각의 바람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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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아이오와대 국제창작프로그램 책임자이자 시인인 크리스토퍼 메릴. <<연합뉴스DB>>
▲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에 언제나 정치적인 부분을 비롯한 여러 고려사항이 있다. 지난 10년간 수상자가 절반 넘게 유럽에서 나왔고 미국은 (1993년 이후) 받지 못했다.
예를 들어 알바니아 작가 이스마엘 카다레는 정말 아름다운 작품을 쓰는 작가다. 30년 전인가 그의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깜짝 놀랐다. (2009년 수상자인) 헤르타 뮐러는 카다레보다 나아서 상을 받았을까? 나이지리아 작가 치누아 아체베 역시 너무나 아름다운 작품을 썼지만 고국의 월레 소잉카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다음 결국 수상하지 못했다. 이밖에 북미지역만 해도 앨리스 먼로, 필립 로스, 존 애쉬베리, 마거릿 애트우트 등 훌륭한 작가가 너무나도 많다.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한 위대한 작가들이 허다하니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IWP에 한국 작가들이 많이 오는데 기본적인 문학적 역량이 뛰어나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이 중요할 수도 있지만 한국 작가들이 높은 문학적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 것 같다.
-- 한국 작품들을 영어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해외의 한국 작품 인지도가 과거에 비해 어떤지.
▲15년, 20년 전과 비교해보면 한국 작품들이 많이 번역돼 나왔고 '한국 문학'이라는 것에 대한 일반의 의식이 많이 생겨났다. 중국과 일본보다는 상대적으로 뒤처진 부분이 있기는 하다. 오르한 파무크의 경우 터키에서 유일하게 영어로 작품이 번역된 작가인데 20년 뒤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 문학작품 번역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한 견해는.
▲좋은 번역가는 정말 중요하다. 중국 작가 모옌이나 수팅, 위화의 작품 번역본을 통해서 해외에서는 중국에 대한 더 큰 이해를 갖게 된다. 중국의 경우 문학작품을 미국에 소개하는 훌륭한 번역가가 있는데, 한국작품을 그만큼 번역할 수 있는 번역가는 아직 없다.
-- 한국에서는 시를 읽는 독자가 갈수록 줄어든다고 보는데….
▲미국도 그렇다. 일부 시인들은 평이한 언어로 스토리가 있는 시를 써서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기도 한다.
하지만 시는 음악이나 영화 같은 다른 장르가 할 수 없는 어떤 점 때문에 여전히 살아남고 있다. 한 곳에 집중해 경험을 확대하게 하고 이미지나 운율의 능란한 사용을 통해 머릿속에 각인되는 구절을 만들어낸다. 19세기 시인 에밀리 디킨슨이 시집을 출간하려고 할 때 아무도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지금은 굉장히 중요한 작품이 되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9/30 10:45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