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1958-2009)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는 법정공방이 끝을 향해 달려가는 가운데, 그가 살아 있었다면 영화 제작자로 두 번째 인생을 펼쳤으리라는 증언이 나와 시선을 끈다.
22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21주에 걸쳐 50명의 증인이 동원된 이 '세기의 재판'에서는 잭슨이 미처 이루지 못한 '꿈'들에 대한 증언이 잇따랐다.
그의 아들인 프린스 잭슨 등의 유가족은 "잭슨이 영화 제작자로 '제2의 삶'을 모색했다"고 법정에서 밝혔다.
이들은 잭슨이 '스릴러(Thriller)'나 '리멤버 더 타임(Remember the Time)' 같은 자신의 뮤직비디오 명작들을 '영화'로 여기고 있었으며, 이집트의 파라오나 시카고의 갱단을 소재로 삼은 더 큰 프로젝트를 꿈꾸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프린스 잭슨은 그의 아버지가 종종 같은 영화를 두 번씩 보여 줬으며, 함께 영상을 분석할 수 있도록 처음에는 음성을 끈 채로 영화를 틀었다고 회고했다.
또 배심원들을 향해 자신은 영화 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으며, 아버지가 살아 있었다면 이같이 이끌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판에서는 마이클 잭슨이 2009년 당시에는 주류가 아니었던 3D 기술에 깊은 관심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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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클 잭슨
그의 조카인 타지 잭슨은 "삼촌은 유명 영화감독들과의 작업, '스무스 크리미널(Smooth Criminal)' 같은 그의 히트곡을 기반으로 한 영화 작업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잭슨의 생존을 전제로 한 가정들은 법원이 재판에서 유가족 측의 손을 들어줄 때 의미를 지닌다.
유가족 측의 변호사가 아직 구체적인 청구 금액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잭슨이 살아있었다면 연간 수억 달러의 '돈방석'에 앉았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유가족 측에 따르면 잭슨은 지난 2009년 7월 영국 런던에서 50회로 예정된 컴백 공연 '디스 이즈 잇(This Is It)' 이후 월드 투어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부인하는 공연기획사 AEG 라이브 측은 월드 투어는 확정된 것이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마이클 잭슨은 지난 2009년 6월 주치의인 콘래드 머리 박사로부터 치사량의 프로포폴을 투여받고 사망했으며, 현재 머리 박사는 과실치사혐의를 인정받아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머리 박사의 고용을 통한 AEG 라이브 측의 책임이 인정되려면 최소한 9명의 배심원이 유가족 측의 손을 들어주어야 한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9/23 11:44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