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영현 기자 = "암컷이 낚싯바늘을 물면 수컷이 달려들어 교미를 하다가 다같이 낚싯줄에 끌려 올라오는 예가 있다. 암컷은 먹이 때문에 죽고 수컷은 색을 밝히다 죽는 셈이니, 이는 음(淫)을 탐하는 자에게 본보기가 될 만하다."(217쪽)
참홍어에 대한 설명으로 조선시대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에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물고기 박사'로 유명한 황선도 씨는 신간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에서 정반대로 해석한다. 참홍어는 '삼강오륜을 지키는 일부일처주의자'라는 것이다.
한 발짝 더 나아가 '교미 후 기꺼이 암컷에게 잡아먹히는 수사마귀처럼 짝에 대한 마지막 작별의 애절함'이라고까지 표현한다.
아울러 참홍어 생식기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수컷의 생식기는 체반 끝 꼬리 시작 부위 양쪽으로 두 개가 툭 삐쳐나와 있고 가시가 붙어 있는데, 옛날 뱃사람들은 생식기가 조업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가시에 손을 다칠 수도 있어서 잡자마자 배 위에서 칼로 쳐 없앴다고 한다.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라는 비속어가 나온 배경에 대해서는 "참홍어 생식기가 두 개라는 사실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중요한 물건이 하나도 아니고 두 개라는 것에서 이미 희소성이 없어졌으니 말이다"라고 설명한다.
고등어 자원 생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는 등 30년간 바다 어류를 연구한 저자는 책에서 우리나라 바닷물고기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맛깔스러운 입담으로 풀어놓는다.
각 장을 나눈 방식부터 독특하다. 매월 가장 맛있는 제철 물고기 16종을 선정해 1월부터 12월까지 차례로 설명한다.
1월 명태, 2월 아귀, 3월 숭어, 4월 실치와 조기를 거쳐 11월 홍어와 12월 꽁치와 청어로 마무리한다. 각 장에서는 물고기 이름의 유래와 관련 속담, 맛있게 먹는 법, 조사 현장에 겪은 이야기 등을 들려준다.
뱀장어는 맛과 영양이 좋지만 회로는 먹지 않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저자는 "뱀장어의 피에는 이크티오톡신이라는 독이 있어 이 독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라며 "이크티오톡신은 인간의 체내에 들어가면 중독 증상을 일으키며 눈에 들어가면 결막염을, 상처에 묻으면 염증을 일으킨다. 그러나 열을 가하면 이런 독성이 곧 없어진다"고 설명한다.
이 밖에도 '고등어는 왜 등이 푸를까' '넙치와 가자미는 눈이 왜 한쪽에 몰려 있을까' '자연산 복어에는 독이 있는데, 왜 양식한 복어에는 독이 없을까' 등 누구나 생선을 먹을 때면 한 번쯤 품어봤을 여러 의문에 대해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녹여 답한다.
책 제목에서 언급한 멸치 머리 블랙박스는 '이석(耳石)'을 일컫는 말이다. 평형기관 구실을 하는 이석은 단단한 뼈를 가진 경골어류가 갖고 있는데 쪼개어 성장선을 분석하면 이 물고기가 며칠에 태어났는지까지 알 수 있는 등 여러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부키. 240쪽. 1만5천원.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9/10 07:0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