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 상태 최상…美대리공사 직접 그린 듯"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1884년 순 한글로 제작된 서울지도가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밀워키도서관 부속 미국지리사회학도서관에서 옛 모습 그대로 발견됐다.
연합뉴스가 7일 입수한 '경조오부도(京兆五部圖)'에는 서울 사대문과 북악산, 남산을 중심으로 압구정, 영등포, 한강진, 용산, 노원, 안암동 등 현재까지 그대로 불리는 지명들이 한글로 표기돼 있다.
이ㅌㆎ안(이태원), 여의셤(여의도), 셔빙고(서빙고), 살고지벌(살곶이·뚝섬), 박석이고지(박석고개) 등은 1880년대 한글표기법과 지명을 확인해주는 사례다.
경조오부는 서울의 중부와 동서남북부를 뜻한다. 오부의 개념은 고구려부터 사용하기 시작해 특히 군대 행군이나 전투대형을 갖출 때 활용됐다. 이 지도에도 총융청 같은 관아와 남산 방어용 성곽의 위치가 모두 표시돼 있다.
아울러 서울시내 산세, 강줄기, 섬, 성곽 모양과 인천, 가평, 용인, 시흥, 고양 등 외곽으로 나가는 길까지 상세히 표기돼 현재와 비교해볼 수 있다.
<<경조오부도 확대부, 미국 위스콘신대 밀워키도서관 부속 미국지리사회학도서관 소장품으로 유광언씨가 지도사용권을 얻어 무상 양도>>
만든 지 129년이 지난 지금까지 처음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 것도 경조오부도의 특징이다.
밀워키도서관 미국지리사회학도서관의 실무책임자 앤젤라 코프(Angela Cope)는 연합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때까지 본 것 중 보존상태가 가장 좋은 지도"라며 "우리가 뭘 가졌는지 잘 몰랐던 것이 오히려 100여 년간 손길을 거의 타지 않고 보존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연구된 적이 없어 확정할 수는 없지만 내구성이 우수한 한지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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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조오부도 전체, 미국 위스콘신대 밀워키도서관 부속 미국지리사회학도서관 소장품으로 유광언씨가 지도사용권을 얻어 무상 양도>>
지도를 그린 사람에 대해서는 구한말 미국 대리공사를 지낸 조지 클레이튼 포크(Foulk. 1856-1893) 미 해군 중위라는 가설이 힘을 얻고 있다.
가장 먼저 도서관에서 이 지도를 발견한 재미 민간사학자 유광언씨는 "포크 중위가 개성여행 때 그린 수원, 강화, 개성 일대 지도가 공개된 적이 있는데 경조오부와 매우 흡사하다"며 "그는 한글 자모를 쉽게 쓰고 발음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중위가 갑신정변 직전 1884년 서울에 도착했을 때 지리를 익히려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모방해 그린 것으로 보인다"며 "상하좌우로 각각 3번씩 접으면 딱 군복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크기"라고 덧붙였다.
포크 중위는 다양한 서울 관련 사료를 남겼다.
그가 1887년 일본에서 37세로 요절하면서 직접 찍었던 서울의 사진들과 여행허가서, 조선정부 내부 행정서류 등 유품이 부친에게 넘겨졌고, 미국지리사회학도서관은 1895년 경조오부도를 비롯해 그중 상당수를 구입했다.
밀워키도서관 부속 미국지리사회학도서관 역시 이 지도를 포크 중위가 직접 그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는 "국내의 지리ㆍ역사ㆍ국어학자들이 경조오부도를 연구하게 된다면 많은 학술적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9/07 05:53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