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 소재 과학연극…'친환경주의' 맹신에 질문 던져
(서울=연합뉴스) 강일중 객원기자 = 지구온난화를 소재로 한 과학연극 한 편이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 무대에 올랐다.
제목은 '이단자들(원제:The Heretic)'. 빈틈없는 논리와 확실한 증거를 생명으로 하는 과학에서 소재를 따왔지만, 작품은 인간 삶 속의 불확실성을 얘기한다.
이 연극이 다루는 과학적 측면에서의 주제는 '절대성에 대한 도전과 의심'이다. 갈릴레오가 "우주의 중심은 지구"라는 절대적 믿음에 의심을 가졌던 이단자였던 것처럼.
극 중 다이앤은 입증되지 않은 것은 믿지 않는 과학자로 한 사람의 '이단자'다. 요크과학기술대학 고기후학과 교수인 그는 '입증되지 않은 친환경 논리'를 철저히 배격하면서 "몰디브의 해수면 상승은 과학적으로 예견할 수 없으며 기우일 뿐임"을 밝히는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학교 학과장인 케빈은 그의 논문 발표에 제동을 건다. "온난화 현상으로 위기에 처한 지구를 보호해야 한다"는 '친환경 논리'를 내세워 큰돈을 버는 대기업의 후원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사진=강일중) |
다이앤은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는다. 원래 논문을 발표키로 했던 네이처 지가 아닌 다른 잡지를 통해 자신의 견해를 드러낸다.
또 BBC방송의 논쟁프로그램에 출연해 몰디브 측이 서양의 산업과 공해로 인한 해수면의 상승가능성을 입증할 과학적 근거로 그린피스, 세계야생기금, 그리고 환경단체들의 자료를 인용하려 하자 "그들은 과학자가 아니에요. 그냥 자연옹호단체일 뿐"이라며 일축한다.
그는 입증되지 않은 친환경 가설을 대중이 맹신하게 하는 여론조작, 친환경의 미명 아래 사욕을 채우면서 시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기업과 집단에 대한 공격의 화살을 늦추지 않는다.
그러자 다이앤에게 환경보호단체라고 자처하는 '정말 용감한 지구 용사들'이라는 과격조직으로부터 살해 협박 편지가 날아든다.
이런 내용과 엉키는 다른 한 축의 이야기는 다이앤과 거식증에 걸린 딸 피비, 또 피비를 좋아하는 지구과학과 학생 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기후변화나 지구의 위기에 대한 분명하고 단호한 입장과는 달리 다이앤은 피비와 벤에 대해서는 무척 혼란스럽다. 피비는 그린피스에 가입하려 하고 있으며, 벤은 휘발유를 사용하는 버스의 탑승을 거부하며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활용할 정도로 극단적인 환경보호주의자다. 거주공간도 강가에 있는 조각배다. 그러나 다이앤에게 이들은 감성에 휘둘리는 치기 어린 환경보호주의자들일 뿐이다.
게다가 피비는 조울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벤은 아버지를 극도로 미워하며 자해 행위를 할 정도로 신경이 불안정하다. 다이앤은 불안한 심정으로 둘의 결합을 어떻게든 저지하려 한다.
(사진=강일중) |
두 축의 이야기는 그러나 일관성을 띠며 마무리된다. 몰디브의 해수면 상승이 입증되지 않은 것처럼 거식증의 피비와 불안정한 신경의 벤이 결합함으로써 불행해 질 것이라는 가설은 성립될 수 없다. 다이앤의 축복 아래 뱃속에 아기를 가진 피비와 벤은 자전거를 타고 결혼식장으로 향한다.
사실 극 중 다이앤의 대사와 논리는 친환경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갖고 있는 일반인들에게는 아슬아슬하게 느껴질 수 있다.
"친환경주의는 극단주의에요. 자아도취에 빠진 종교집단 같죠. 물론 다 그렇진 않겠죠. 하지만, 대부분이 타인의 선택에 대해 관대하지 않아요. 지구 멸망이라는 픽션을 인질 삼아 모든 인간을 집단화하고 있다고요. 친환경주의는 현대판 전체주의일 뿐이에요."
다이앤의 이 대사는 또 다른 극단이다. 흡사 이념대립 같은 양상을 띤다. 그는 지구온난화가 산업화 등으로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기후주기의 하나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작품은 지구환경과 관련된 입장에서 다이앤의 반대 끝에 서 있는 피비와 벤, 또 결국은 그들의 결합을 축복해 주는 다이앤을 통해 전체의 균형을 맞춰간다.
그러면서 우리가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 친환경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가 믿고 있는 지구의 위기는 진실일까? 이러한 위기감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일까? 혹, 누군가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불필요하게 우리의 불안감을 조장하는 것은 아닐까?
(사진=강일중) |
과학연극이라고 해서 진지하고 어렵기만 한 연극은 아니다. 블랙코미디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중간 중간 웃음을 자극하는 장면들이 많이 있다.
최근 영화와 TV드라마의 영역까지 넘나들며 활발한 연기활동을 하는 대학로의 중견배우 서이숙(다이앤 역)과 역시 좋은 연기로 호평을 받는 중견 류태호(케빈 역)를 중심으로 신진 연기자들이 함께 조화를 이뤄낸다.
이태린의 BBC 방송 앵커와 대학 인사 담당 직원 역 연기가 약방의 감초 같은 맛을 낸다.
여러 번 권위 있는 희곡상을 수상한 영국 극작가 리처드 빈의 이 작품은 이미 발표된 다양한 논문과 실증적인 수치를 통한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쓰였다. 2011년 런던의 로열코트씨어터에서 초연됐으며 이번 공연은 아시아 지역 초연이다. 이번 작품 제작 과정에는 이승호 건국대 기후연구소 소장이 과학자문으로 참여했다.
'이단자들' 출연진의 커튼콜 장면. 왼쪽부터 보안요원 제프 역 신문성-딸 피비 역 신사랑-다이앤 박사 역 서이숙-학과장 케빈 역 류태호-벤 역 장선우-앵커 역 이태린 배우. (사진=강일중) |
◇ 연극 '이단자들' = 극단 사개탐사(대표 박혜선)의 창단공연. 극단 이름은 "사회와 개인을 탐사한다"라는 문장의 줄임말이다.
만든 사람들은 ▲번역/윤색/연출 박혜선 ▲무대디자인 하성옥 ▲조명디자인 황종량 ▲음악 김철환 ▲의상디자인 강태희 ▲분장 백지영 ▲소품디자인 서정인 ▲조연출 김현진.
출연진은 서이숙·류태호·장선우·신사랑·신문성·이태린.
공연은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에서 다음 달 1일까지. 공연 문의는 ☎1666-5795.
ringcycle@naver.com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8/24 10:21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