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서 배우 삭발식·간담회
(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 16일 종로구 견지동의 조계사 대웅전.
오현경, 이문수, 박팔영, 민경진, 배수백 등 5명의 배우가 하늘빛 보자기를 두르고 앉았다.
스님들의 이발기가 이들의 머리를 훑어 내려가자 머리카락이 보자기 위로 툭툭 떨어졌다. 반질반질해진 머리에는 푸릇한 빛이 감돌았다.
이날 삭발식에 참가한 배우들은 비구의 깨달음 과정을 그린 연극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에서 스님으로 분하는 출연진이다.
삭발식이 봉행되는 동안 배우들은 긴장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지그시 눈을 감기도 했다.
이발기 소리가 멈추고서야 비로소 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이문수는 "마치 좋지 않은 기운이 슥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고 했고, 박팔영은 "복잡한 마음이 정리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목탁구멍…'은 속세에서 참담한 경험을 하고 출가한 비구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1990년 초연돼 삼성문예상, 서울연극제 희곡상, 남자연기상, 특별상, 백상예술대상 연출상, 희곡상 등을 받은 작품을 오현경, 최종원 등 연극계 대표 배우의 연기로 다시 무대에 올린다.
극은 미대 교수이자 조각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속세를 떠나 스님이 된 '도법'이 불상을 제작하며 득도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도법은 불상을 부숴버리라는 망령을 만나고, 급기야는 조각칼로 자신의 눈을 찌르지만 그 순간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이날 백발을 짧게 자른 오현경(방장스님 역)은 "이 작품은 삶을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라며 "나 자신은 기독교인이지만 작품을 분석해 배우로서의 연기술을 보여줄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도법스님으로 분하는 박팔영은 "23년 전 초연 당시 분장 스태프로 작품에 참여했다"며 "이렇게 주역으로 무대에 서게 돼 감개무량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것은 목탁구멍…'은 연극 '불 좀 꺼주세요', '피고 지고 피고 지고' 등으로도 잘 알려진 콤비 이만희 작가·강영걸 연출가의 작품이다.
이날 배우들에 앞서 이미 삭발을 한 채 간담회에 참석한 강 연출가는 불교에 기반해 만든 연극이지만 관객이 종교를 초월한 마음으로 극장에 오기를 바랐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단초를 제공하리라 봅니다. 종교를 통해 사람의 원천을 이해하고, 더 넓은 시야로 종교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될 겁니다."
▲ 연극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 = 극단 완자무늬(대표 김태수) 제작. 9월23-29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10월4-5일 노원문화예술회관, 10월11-12일 경북 안동문화예술의전당 공연. ☎1544-1555.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8/16 13:53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