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기'서 구조대원 '강지구' 역.."내 모습과 가장 가까운 연기"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저는 단순한 뇌구조를 갖고 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부분만 생각합니다. 그 범위를 넘어선 것에 대해서는 아쉬워하거나 걱정하지 않아요."
배우 장혁(37)은 자신이 주연한 영화 '감기'를 얘기하며 특유의 긍정 에너지와 열혈 근성을 보여줬다.
영화 개봉(14일)을 앞두고 지난 12일 삼청동에서 만난 그는 자신이 맡은 영역에선 얼마든지 몸바칠 각오가 돼 있다는 뜨거운 기운을 뿜어냈다. 그가 집필해 최근 출간한 에세이 '열혈남아'의 제목과 꼭 같은 모습이었다.
이는 최근 TV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에서 그가 보여준 적극성과도 맞닿는 부분이었다.
"제 본성 자체가 좀 그래요. 요즘 빠져 있는 게 복싱인데요. 아무리 혼자서 연습을 많이 해도 상대방이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부분이 커요. 쉽게 생각하면, '저 사람도 나만큼 떨고 있구나'라는 걸 느껴야 돼요. 그걸 잊지 않으면서 정신적으로 조금 더 버티는 게 중요하죠. 거창하게 생각하기보다는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부분을 하고, 그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몸에 밴 것 같아요."
영화와 TV드라마, 짬짬이 예능까지 그는 쉼 없이 움직인다. 그렇게 그의 필모그래피는 빼곡히 채워졌다. 안방극장에서는 '마이더스' '뿌리깊은 나무' '추노' 등 히트작을 내놨고 스크린에서는 '감기' 이전에 '의뢰인' '토끼와 리저드' '오감도' '펜트하우스 코끼리' 등 1-2년 간격으로 꾸준히 작품을 이어갔다.
그런 지치지 않는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현장이 좋아요. 좋으면 에너지는 필요 없는 것 같아요. 그것 자체가 에너지를 계속 생성하니까요. 20대 이후에는 늘 현장에 있었거든요. 내 기억에 친구들이랑 어울린 게 열아홉 살 이전 말고는 없는 것 같아요. 현장이 이젠 몸에 밴 듯한 느낌이고, 특히 현장에서 좋은 선배들을 만났을 때는 더 좋아요."
일 자체를 즐기기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별로 없다.
이번 영화 '감기' 역시 이것저것 재지 않고 뛰어든 작품이다.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된 가장 큰 동기는 10년 전 영화 '영어완전정복'을 함께 한 김성수 감독과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처럼 그는 실제로 사람과의 의리를 소중히 여긴다고 했다.
"첫 사무실(소속사)이 지금 사무실이에요. 나를 이렇게 데려온 사람이기 때문에 같이 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데뷔 초기 작품을 함께 한 김성수 감독님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고요. 감독님이 직접적인 지시를 하지 않고 자유롭게 해보도록 지켜본 뒤 '오케이'를 하는 분이기 때문에 그 오케이에 대한 신뢰도 컸습니다."
감독이 그에게 '가공된 캐릭터가 아니라 너를 한 번 표현해봐라'며 자유로운 연기를 주문한 것은 큰 도전이었다고 했다. 이 영화에서 그는 소탈한 성품으로 다른 사람들을 보살펴주는 소방대 구조대원 '강지구'를 연기했다.
"연기 경력이 쌓이면서 연기란 것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한 개념은 캐릭터가 줄에 매달린 인형이고 나는 그걸 조종하는 사람이라는 거였어요. 그런데 이번엔 그게 아니라 내가 그 인형이 직접 돼서 해보라고 하니까 처음엔 그게 쉽지 않았고 내가 하는 게 맞나 싶었어요. 그런데 파고들수록 내 연기 자체보다는 이야기 흐름 안에서 사람들의 군상이 중요한 거라는 걸 깨닫게 됐고 그 안에서 조금씩 편하게 내 모습을 투영할 수 있었죠."
영화 '감기' 중 한 장면. |
그렇게 만들어진 '강지구'란 캐릭터는 그동안 연기해 온 캐릭터 중 가장 자신의 진짜 모습에 가깝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그렇게 이타적인 사람일까.
"이기적인 부분도 있고 이타적인 부분도 있지만, 이타적인 성향이 조금 더 있는 거죠. '진짜 사나이'에서 제 모습과도 비슷한 게 있어요. '진짜 사나이'는 대본이 없고 상황만 있거든요. 그 안에서 나도 정말 힘든데, 그래도 나보다 조금 못한 친구에게 손길이 가게 되는, 그런 느낌의 이타성이 있는 것 같아요. 이 영화에서도 사실 감기 바이러스 치료법도 없고 한 도시가 폐쇄된 상황에서 아무리 구조대원이라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저 한 여자의 어머니에게 공감해서 아이를 지켜가는 과정에서 자꾸 버티다 보니까 조금 더 나아가게 되는 거죠. 그런 자연스러운 느낌을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최근 그의 인기를 치솟게 한 '진짜 사나이' 출연 동기를 물었다.
"40대를 준비하는 제 마음가짐이 계속 떠있는 느낌이 있었어요. 오늘이 며칠인지도 모른 채 그저 흘러가는 느낌이었죠. 그런데 '진짜 사나이'를 보면서 군 생활을 돌아보니 하루하루 꾹꾹 찍어가던 느낌이 떠오르더라고요. 거기선 날짜를 정확하게 알잖아요(웃음). 또 다른 부분은 제 아이를 생각하면서 나온 결심이에요. 마음속에 한 가지 걸리는 것이, (군대 문제와 관련해) 잘못했던 부분이 선명하게 있단 말이죠. 나중에 아이가 접했을 때 내 진심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어요."
최근작 중 '의뢰인'을 제외하면 액션 연기가 많은 작품을 주로 하다 보니 '액션 배우'의 이미지가 강해진 것도 사실이다.
"액션 배우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액션을 좋아하고 흥분하면서 하지만, 이쪽만 가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저울로 말하자면 0점 조절이 안 된다는 생각이죠. 실제로 들어오는 캐릭터들이 점점 그런(액션 장르) 게 많아지는데, 균형 있게 하고 싶습니다."
'의뢰인'에서처럼 의뭉스러운 반전 캐릭터를 또 기대할 수 있을까.
"'의뢰인'이 많이 와 닿았던 건 '라쇼몽'이랑 '프라이멀 피어'의 느낌이 있는 작품이어서였어요. 표현을 안 하는 게 하는 것보다 더 많은 표현이 되는 지점이 재미있었죠. 전형적인 것과 당연한 것의 차이가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김밥에 김과 밥이 있는 건 당연한 거지만, 단무지와 햄이 있는 건 전형적인 거잖아요. 당연하지만 전형적이지 않은 연기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다음 작품은 '화산고'를 함께 한 김태균 감독의 멜로 영화 '딸기우유'를 검토 중이라고 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8/13 05:5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