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사람을 위한 경제학'
(서울=연합뉴스) 김영현 기자 = 19세기 중반 '평균 영국인'은 농장일꾼이었다. 이들의 생활수준은 로마시대 노예보다 나을 게 없었다.
어두운 방 한 칸이 가진 전부였고, 혹독하게 일해도 처지는 나아지지 않았다. 평생 기아에 시달렸고 신분 변화도 없었다.
무역과 산업혁명이 영국 국부를 크게 늘렸지만 농장일꾼에게는 달라진 게 없는 세상이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부터 세상은 바뀌었다. 견고하게 굳어진 채 이어진 비참한 생활 조건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비관과 체념에 젖은 하층민이 '새로운 도구로 운명을 바꿔나갈 수 있다'는 의식을 갖게 됐다.
급변한 이런 상황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학문 분야가 경제학이다.
천재 수학자 존 내시의 일생을 다룬 전기 '뷰티풀 마인드'로 유명한 경제전문 언론인 실비아 나사르는 "1870년대 이전 경제학이 주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없느냐에 대한 학문이었다면, 1870년 이후 경제학은 주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에 대한 학문"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신간 '사람을 위한 경제학'(원제: Grand Pursuit)에서 '인간이 자신의 경제적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이 아이디어가 진화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책은 인물 중심으로 19세기 경제사상부터 훑는다. 엥겔스와 마르크스, 앨프리드 마셜 등 전설적인 경제학자부터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이겨내는 데 기여한 슘페터, 하이에크, 케인스 등의 삶을 조명한다.
20세기 후반에는 뉴딜 정책 지지자로 실업률을 떨어뜨리는 일을 담당한 밀턴 프리드먼, 경제 예측은 틀렸지만 경제학 교과서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폴 새뮤얼슨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경제사상의 역사를 다뤘지만 '경제학이 사람들의 삶을 바꿀 도구'라는 주제로 여러 인물의 삶을 뀄기 때문에 앞뒤 스토리 흐름에 일관성이 뚜렷하다. 저자는 "내가 선택한 인물들은 경제학을 주인되는 도구로 바꾸는 데 기여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인물들의 독특한 개성 관련 일화가 흥미롭다. 승마바지를 입고 강의실로 들어간 슘페터, 늘 마감을 어겨 '수호천사' 엥겔스를 초조하게 한 마르크스, 결핵에서 살아남아 건강 전도사가 되면서 낙관적인 세계관까지 갖게 된 어빙 피셔 등의 일화도 풍부하게 소개된다.
"나는 그들이 저마다의 세계를 보면서 무엇을 발견했을까를 상상해보고자 했고, 무엇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그들의 정신을 고무했을까를 이해해보고자 했다. 그들은 모두 케인스가 '인간의 정치적 문제'라고 부른 것, 곧 '경제적 효율, 사회적 정의, 개인적 자유라는 세 가지를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해결할 학문적 도구를 모색하는 사상가였다."(14-15쪽)
반비. 816쪽. 3만원.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7/31 06:11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