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장편 '안녕, 내 모든 것' 출간
(서울=연합뉴스) 백나리 기자 = 지금 같으면 잘 상상이 안 되는 일들, 이를테면 대낮에 백화점이 무너지고 한강 다리가 끊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20대는 신세대로 불리고 10대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따라 너도나도 흰색 반팔티에 야광 나시를 입던 시절이기도 했다.
정이현(41)은 새 장편 '안녕, 내 모든 것'에서 이 시절로 직행한다. 1980년대와 2000년대의 어설픈 자락처럼 느껴지고 IMF 구제금융이라는 충격까지 겹쳐 기억하기 꺼려지는 1990년대다.
"민주화가 됐다는 새 시대의 분위기에 물자가 넘치고 해외여행도 자유화되고…. 이상한 낭만이 흐르고 붕 떠 있던 시절이었어요. 그때 성수대교도 무너지고 삼풍백화점도 무너졌는데 다들 애써 실금들을 무시하다가 IMF로 '뻥' 터진 거죠. 그때를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것 같아요. 1990년대는 소비되고 휘발돼 버린 느낌이라서 애잔하고 쓸쓸해요. 그 시대에 대한 얘기를 꼭 하고 싶었어요."
소설엔 1978년생 동갑내기 세 친구 세미와 준모, 지혜가 등장한다. 부유한 외가에 떠밀듯이 맡겨진 세미와 뚜렛 증후군으로 아무 때나 욕설이 튀어나오는 준모, 엄마 아빠를 '맘(Mom)'과 '대디(Daddy)'의 머리글자인 '엠'과 '디'로 부르는 지혜다.
제 몫의 상처가 선연한 세미와 준모, 그리고 10대 특유의 과장된 예민함 말고는 큰 탈 없는 지혜는 서로에게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시절을 산다. 셋이 모일 때 맥주도 사다 놓지만 '복잡해질 뒷일을 감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50쪽) 따라놓기만 하고 마시지는 않는 10대의 까다로운 시절을 서로가 다독이며 통과한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는 동시에 다시 얼굴을 마주 보기 어려운 사건에 직면한다. 구덩이를 파고 누군가를 묻고 돌아설 때 그들 각자의 지난하고 뾰족한 10대가, 그리고 그 시절에만 나눌 수 있었던 어떤 우정이 막을 내린다.
"성장이라고 할 때, 꼭 진보나 발전은 아닌 것 같아요. 부모세대가 찌질하고 하찮아 보여도 그들이 욕망을 억누르고 나를 먹여 살렸다는, 삶의 이면 같은 걸 알게 되는 것일 수도 있겠죠. 구덩이에 비밀이든, 더러운 것이든, 무엇이든 파묻고 나서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매끄러운 얼굴이 되어서 살아가는 게 어른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죠. 그런 의미에서 넓게는 성장 소설로 읽힐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김일성이 죽고 전직 대통령이 둘이나 구속되는 일까지, 굵직한 사건들이 너무 많아서 평범한 이들은 대체 어떻게 살았던 것인지까지 기억하기 쉽지 않은 그 시절이 세미와 준모, 지혜의 10대 시절에 휘감겨 뭉실뭉실 살아난다. 소설의 무대는 강남이어서 속된 욕망도 거침없이 흘러나온다. 돈 많은 엄마가 판검사 사위를 보려고 애쓰고 이 엄마가 쇠약해지자 아들딸이 유산 생각에 여념 없는 식이다.
"꼭 강남이야기로 읽히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강남이라는 곳은 대한민국의 무언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죠. 풍경의 세목을 보여주고 강남이라는 공간과 우리 사회의 모습이 어떤지 보여주려 했어요."
소설의 제목은 '안녕, 내 모든 것'이다. 전작도 '달콤한 도시'가 아닌 '달콤한 나의 도시'였고 이번에도 1인칭이 포함됐다. 이번 제목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 '내 모든 것'에서 빌려왔지만 '내'라는 소유격 자체가 1990년대의 표식이다.
'마이마이' 아세요? 저의 학생 시절은 '마이마이'를 얻기 위한 투쟁의 시기였어요(웃음). 이어폰을 끼고 마이마이로 자기만의 음악을 듣던 경험이 저한테 깊숙이 있어요. 19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세대는 개인의 개체성을 중요하게 여긴 첫 세대 같고…. 제 문학세계에서는 지금도 개인성이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창비. 252쪽. 1만2천원.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7/04 10:45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