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기자/스포츠닷컴]
대구시는 경상감영복원과 관련해 규장각, 국가기록원, 국외 박물관 등 관계기관의 소장 자료의 원문검색, 현지출장 등을 통한 기초자료 조사 결과, ‘객사의 정확한 위치를 나타낸 문서’ 발굴과 ‘감영 건물의 위치를 그린 공해도’의 원본을 확인했고, <영남제일관>, <달서문> 사진 등 신규 자료의 발굴하는 성과를 거뒀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소 소장『주본奏本』중에서 1908년 대구재판소 관사부지 확보를 위해 국유지인 객사부지와 동문 밖 관사 예정지인 개인 소유지 1만여 평과 교환한다는 기록과 객사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도면을 찾았다.
※『주본奏本』은 1896년에서 1910년 사이 의정부와 내각에서 왕에게 올린 글과 각 부의 청원서 등을 모은 책이다.
또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소 소장『각관찰도거래안各觀察道(去來)案』중에서 1907년 작성된 <경상북도관찰부 공해도(公?圖)> 원본을 확인했다. <경상북도관찰부 공해도>는 경상북도관찰부의 40개의 건물명과 선화당을 중심으로 한 관풍루, 내삼문, 징청각, 내영리청, 외영리청, 사령청, 도훈도청, 연초당 등 경상감영의 주요시설의 위치와 배치를 보여주고 있어, 1896년 지방관제가 개편된 이후 일제의 침탈이 시작된 1907년의 경상감영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각관찰도거래안各觀察道(去來)案』은 1906년에서 1910년 각 도 관찰사와
외사국(外事局) 사이에 오간 보고서와 훈령을 모은 것이다.
<영남제일관>, <달서문> 사진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한국관련 고사진 중 일부다. <영남제일관>은 서까래와 부연, 공포의 모습과 단청까지 구별할 수 있는 선명한 사진으로 하부의 홍예문, 성벽돌 부분과 상부의 누각부분을 감싼 벽돌부분이 확인되며, ‘영남제일관’과 이층누각의 ‘낙서루’ 현판이 보이고 있다.
<달서문> 사진은 최초로 확인된 자료로 정면 가로 3칸, 측면 2칸 구조로 팔작지붕이다. 용마루에 장식을 올리고, 전면에 ‘달서문’ 현판, 달서문 우측 출입문도 보이고 있다. 이들 자료는 읍성이 훼철되기 전 찍은 사진으로 영남제일관과 달서문의 구조와 원형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들로 평가된다.
눈이 온 뒤 대구읍성 위에서 찍은 <대구> 사진은 일본 가쿠슈인대학(學習院大學) 동양문화연구소 소장『조선풍속사진』의 일부이다. 저 멀리 이층누각의 영남제일관이 보이며, 읍성안 성을 따라 있던 길이 확연히 보이는 사진이다. 사람들의 배경이 된 누각은 1870년 대구읍성 수리할 때 읍성 서편에 증축한 주승루(籌勝樓)로 추정된다.
대구시 김대권 문화체육관광국장은 “이번 신규 발굴된 객사 자료나, 공해도 등은 내년 경상감영 복원 정비 기본계획 수립의 고증 자료로 활용할 것”이라며 “지속적인 감영 관련 자료 조사를 통해 경상감영 복원의 기초 자료를 확보해 나아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하재 기자 lucky05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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