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 악역으로 주목
(서울=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 SBS 수목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배우 정웅인(42)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복수를 위해서라면 살인도 서슴지 않는 민준국을 연기하는 그는 매장면에서 보는 이를 긴장하게 한다. '신스틸러'(scene stealer)란 말이 어색하지 않다.
드라마의 새로운 축으로 떠오른 그를 지난 2일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지난밤 진행된 강도 높은 촬영에 목소리는 조금 쉬어 있었지만 눈빛 만은 살아있었다.
밤새 목 조르고 때리는 장면을 찍었다며 뻐근해진 목을 가다듬는 모습에서는 피곤함보다 뿌듯함이 비쳤다. 제 역을 만난 배우의 뿌듯함이었다.
주변 반응을 묻자 "아이돌이 된 것 같다"며 웃었다. "연락이 안 오던 사람들에게도 '드라마 잘 보고 있다'는 연락이 오고 연극 지방 공연에서도 첫 등장 장면에 박수와 환호성이 나온다"며 뜨거운 반응을 실감하는 듯했다.
그럴 법도 했다. 지난달 초 첫선을 보인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방송 2회 만에 동시간대 시청률 정상에 등극한 데 이어 수도권 시청률 20%를 넘기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인기의 배경에는 탄탄한 대본과 배우들의 호연이 있었다. 법정 드라마와 로맨스, 스릴러 장르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가운데 캐릭터를 십분 살린 배우들의 연기는 '웰메이드 드라마'의 탄생을 알렸다.
정웅인은 "요즘 불륜이나 출생의 비밀에 관계된 드라마가 만연하지만 우리 드라마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다루면서도 로맨틱 코미디와 스릴러을 가미했다"며 "각 장르의 매력이 잘 살아 좋은 반응을 얻은 것 같다"고 풀이했다.
정웅인이 연기하는 민준국은 스릴러의 중심축이다. 10년 전 어린 수하(이종석 분)와 혜성(이보영)의 법정 증언으로 교도소에서 죗값을 치러야 했던 그는 석방 후 둘을 찾아가 복수를 감행한다.
지난주 방송에서는 혜성의 어머니를 가차없이 죽이고 발뺌하는 장면이 전파를 타 시청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민준국이 유독 서늘하게 다가오는 데는 정웅인의 실감 나는 연기가 한몫했다.
"준국을 마냥 눈을 부라리면서 악인처럼 연기하면 오히려 가식적으로 보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인간적인 모습을 살짝 보여주려고 했죠. 웃을 때도 보통 사람이 웃는 듯 살짝 웃고, 과장은 피했습니다."
준국의 범행 장면에서 정웅인은 혜성의 어머니를 연기하는 대선배 김해숙과 팽팽한 연기 대결을 펼쳤다.
정웅인은 "센 캐릭터끼리 붙었을 때 긴장감을 오랜만에 느꼈다"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김해숙 선배님에 대해서는 '무한신뢰'였어요. 선배님이 출연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출연을 번복할까 봐 걱정됐을 정도였죠. 그 장면에서 먼저 찍은 선배님의 연기를 보니 슬픔과 공포, 모성애가 모두 표현돼 소름이 돋았어요. 내가 어떻게 받아쳐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선배님이 나중에 '연기 좋았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정말 좋았습니다."
드라마 방영 후 포털사이트에는 정웅인의 연관 검색어로 새우버거가 떴다. 민준국이 새우버거를 먹으며 수하를 도발한 장면 때문이다. 분노한 수하에게 흠씬 맞으면서도 광기 어린 미소를 짓는 준국의 얼굴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정웅인은 "입 안에 피가 묻은 버거를 문 장면은 대본에 없었지만 흐름상 자연스럽게 그런 모습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며 "종석이가 마침 세게 목을 졸라줘서 좋은 효과가 났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만나기 전 정웅인은 1년간 공백기를 가졌다. 15년 넘게 쉴 새 없이 달려왔지만 해소되지 않는 갈증 때문이었다.
바로 악역에 대한 갈증이었다. 영화 '두사부일체' 시리즈와 시트콤 '세 친구' 등을 통해 다진 코믹한 이미지 외에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많은 배우가 악역을 꿈꿔요. 장동건, 현빈 이런 친구들도 다 악역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영화 '케이프피어'나 '더 팬'을 보면서 악역을 꿈꿨죠. 그렇지만 악역이 쉽지가 않아요. 미묘한 수위 조절이 필요하죠."
그즈음 만난 영화가 강우석 감독의 영화 '전설의 주먹'이었다.
지난 3월 개봉한 이 영화에서 그는 야비한 재벌 3세를 연기했다.
"촬영장에서 강 감독님이 코미디 영화 '투사부일체' 이후 너를 이용해 먹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이 작품 이후로 악역을 하면 연기의 스펙트럼이 넓어질 것이라는 조언을 해주셨죠. 지금 그게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요. 이런 기회가 왔다는 게 정말 감사하죠. 앞으로 한 작품 정도 더 악역을 하고 싶어요."
악역의 매력을 묻자 "평범함을 좇아가지 않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웅인은 "악역 연기가 너무 힘들긴 하지만 배우는 힘들어야 매력이 있다"며 "배우가 편하게 연기하면 관객들이 오히려 불편할 수가 있다"고 소신을 전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이제 후반부로 들어선다. 정웅인은 "앞으로 민준국의 과거가 차차 드러나면서 인간적인 모습이 나올 것 같다"고 귀띔했다.
경쟁작 MBC '여왕의 교실'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았다. '여왕의 교실'의 주연 고현정과는 드라마 '선덕여왕', 아역배우 서신애와는 KBS 단막극에서 호흡을 맞춘 인연이 있다.
"얼마 전 신애에게 문자가 왔어요. 우리 드라마 잘 보고 있다고. 그래서 '경쟁 드라마를 너무 잘 보고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니니'라고 한마디 했죠.(웃음) 고현정 이모한테도 안부 전해달라고 했어요."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7/03 06:2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