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뒤투아 & 로열 필하모닉 내한공연
(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음악이라기보다는 거대한 파도이자 소용돌이였으며, 역동적인 에너지 그 자체였다. 비로소 드뷔시의 '바다'가 어떤 음악인지 알게 됐다.
지난 29일 예술의전당 무대에 선 샤를 뒤투아와 로열 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프랑스 관현악의 진수를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흔히 '인상주의 음악'이라 불리는 드뷔시와 라벨의 관현악곡은 알아듣기 힘든 모호한 음악으로 오해되기도 하지만, 뒤투아는 드뷔시와 라벨의 관현악곡을 명쾌하게 해석해내며 인상주의 음악에 대한 오해를 말끔히 걷어냈다.
명확하고 확신에 찬 지휘로 각 성부의 주요 선율을 뚜렷하게 부각시키면서도 유동적인 템포 변화를 통해 강력한 역동성을 이끌어 내는 뒤투아의 지휘는 일종의 마법과도 같았다. 그가 지휘봉을 흔들면 바다의 거친 바람과 파도, 물방울의 유희, 그리고 바다에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광선이 우리 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듯했다. 마치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에서 마법사 프로스페로가 바다의 폭풍을 일으키는 장면과 똑같은 일이 음악회에서도 일어난 것이다.
사실 이번 음악회에서 관심의 초점은 애초 피아노 협연자인 유자 왕에게 쏠려 있었다. 어린 나이에 세계적인 거장들의 인정을 받으며 성장한 그는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다. 클래식 연주자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의상으로 자주 화제를 모으기도 한다.
이번 공연에서도 유자 왕은 몸에 딱 붙는 강렬한 오렌지색 미니 드레스 차림에 10cm는 족히 넘어 보이는 '킬힐'을 신고 무대에 올랐다. 그의 등장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으나, 연주에 대한 청중의 반응은 엇갈렸다. 만일 드레스처럼 강렬한 연주를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그의 연주가 다소 밋밋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쇼팽의 피아노협주곡 1번 2악장에서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섬세한 표현은 훌륭했다. 일찍이 작곡가 쇼팽은 2악장을 가리켜 "마치 아름다운 봄날 밤의 즐거웠던 추억을 환기하는 듯한 음악"이라 말하기도 했는데, 유자 왕의 연주는 그 표현에 매우 잘 어울렸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초점이 또렷하지 못한 그의 피아노 음색은 전달력이 다소 부족했고 관객 대부분을 사로잡지는 못했다.
공연 전반부에 다소 실망했던 관객이라도 공연 후반부를 뜨겁게 달군 드뷔시와 라벨의 관현악곡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 드뷔시의 '바다' 전곡 가운데 지루하게 연주되기 쉬운 제1곡 '바다 위의 새벽부터 정오까지'의 첫 장면부터 뒤투아와 로열필은 청중의 귀를 집중시켰다.
새벽의 어둠을 뚫고 나오는 오보에의 선율은 어둠 속의 비추는 한줄기 광선처럼 눈이 부셨고, 현악기의 트레몰로와 16분음표의 일렁임은 마치 바닷바람처럼 우리 피부를 스쳐갔다. 일찍이 드뷔시는 그의 교향시 '바다'를 '교향악적 스케치'라 불렀지만, 진정 이 곡을 '스케치'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이 곡을 구체적으로 표현해낸 지휘자가 있다면 바로 샤를 뒤투아일 것이다.
뒤투아의 구체적인 묘사력은 공연 전반부 첫 곡으로 연주된 멘델스존의 '핑갈의 동굴' 서곡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 곡은 종결부에서 템포가 약간 빨라지는 것을 제외하고는 템포 변화의 지시가 나타나 있지 않은 작품임에도, 뒤투아의 템포는 매우 유동적이었으며 각 주제의 성격도 매우 뚜렷하게 표현됐다. 그 덕분에 이 곡은 매우 잘 알려진 곡임에도 매 순간 새롭게 다가왔으며, 마치 핑갈의 동굴 구석구석을 살펴보듯 매 순간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뒤투아가 이끄는 로열필의 공연은 30일에도 이어진다. 이날 공연에서는 프랑스 관현악의 화려한 색채를 느낄 수 있는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이 연주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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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6/30 12:4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