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 감동이 있는 만화 같은 연극
"왜 인간으로 태어나 로봇을 꿈꾸나?"
(서울=연합뉴스) 강일중 객원기자 = 내용은 만화 같다. 제목, 또는 제목 앞에 붙은 'SF 활극'이라는 수식어만 보아도 그 느낌이 온다. 자연, 재미 쪽에 무게 중심이 있다. 그렇다고 마냥 황당무계한 얘기가 아니다. 절망적인 삶, 각박한 세상 얘기가 들어 있다. 한없이 약해진 아버지의 마음속에 있는 부정(父情)이 마음을 뭉클하게 하기도 한다.
대학로의 키작은소나무극장 무대 위에 올려진 연극 '병신3단로봇'은 웃음과 함께 감동이 있다.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본다면 일시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작품이다.
실직자가 되고 아내마저 집을 나간 후 상철은 한강다리 위에서 투신자살을 기도한다. 몸을 던지기 전 우연히 장난감을 파는 노인을 만나게 된다.
불현듯 자신의 어릴 적 로봇을 향한 꿈이 생각나고,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집에 남기고 온 어린 아들에게 로봇을 선물하고 싶은 생각이 솟구친다. 그러나 돈은 한 푼도 없다.
상철은 결국 로봇을 훔치게 되고, 노인이 그를 잡는 등 일대소란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갑자기 빛이 번쩍하더니 상철은 로봇으로 변신하게 된다.
(사진=극발전소301 제공) |
이 연극이 갖는 재미 요소 중 하나는 관객에게 상상력을 발휘하라고 대놓고 요구한다는 점이다.
무대는 붉은칠이 된 나무 막대를 별 의미 없이 무대 양쪽에 설치해 놓은 것과 몇 개의 허름한 나무상자를 제외하고는 텅 비어 있다. 작품에는 해설자가 있다.
그는 무대에 나와 이 작품이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연극쟁이'가 만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소품이나 로봇 의상 같은 것을 제대로 된 것을 장만할 수 없었기 때문에 관객의 상상력이 없이는 이 작품이 완성될 수 없는 것임을 선언한다.
로봇의 변신은 실제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을 뿐이다. 그런 과정 자체가 관극의 즐거움을 높인다.
또 하나의 재미는 무술연기와 '퍽, 퍽' 하는 음향이다. 힘과 정의의 사도인 로봇으로 변신한 상철이 자신을 해고한 회사의 왕사장 부부나 신용카드 남발 도우미 등과 대결을 벌이는 장면에서는 대형부채 등을 이용한 희한한 무술동작 등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락희맨쇼' 등 고선웅 연출이 이끄는 극공작소 마방진이 선보인 작품들에서 나오는 무술연기를 연상케 하지만 '병신3단로봇'의 내용과 잘 어우러진다.
(사진=극발전소301 제공) |
작품은 눈요깃거리뿐 아니라 현실사회의 직장인들에게 생기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해학과 풍자를 섞어 실어내면서 웃음을 안겨준다.
상철은 사장의 이삿날 일을 잘 거들지 않았다고 해서 사장 부인의 미움을 사고 결국 해고당한다.
위험에 처한 상철이 납치당한 어린 아들과 교신을 하는 장면 중 아들이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격려하는 대사는 만화적이기는 하지만 가슴을 울리는 구석이 있다. 또 상철이 "나는 왜 인간으로 태어나서 로봇을 꿈꾸는가?"라고 하는 대사에서도 아련한 아픔이 있다.
재미를 살리다 보니 배우들의 연기에 개그 요소도 많이 있고 더러 연기가 거칠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은 이름이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극단의 신진배우들이 토해내는 대사와 연기에서 특유의 뜨거운 에너지가 발산된다.
(사진=극발전소301 제공) |
◇ 연극 '병신3단로봇' = 극발전소301(대표 정범철) 제작.
만든 사람들은 ▲작·연출 정범철 ▲조명디자인 박성민 ▲의상디자인 유민지·한아름 ▲무술지도 한일규·장철민 ▲조연출 유종안.
출연진은 유안·리민·이동용·윤종구·이영설·김영진·김효선·최은경·한일규·이교엽·배소현·한아름·김형섭·심규현.
이상 14명의 배우가 7명씩 2개 조로 나뉘어 공연한다.
공연은 혜화동 로터리에서 삼선교 방향 길 좌측에 있는 키작은소나무극장에서 다음달 28일까지. 공연문의는 010-9239-1740.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6/28 05:52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