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열녀전' 완역판서 주장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맹자의 어머니가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공동묘지 근처에 살았는데, 이 때문에 맹자는 심심하면 곡(哭) 소리를 흉내 내곤 했다. 그래서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싶어 시장으로 이사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장사치들의 물건 파는 흉내만 냈다.
이것도 안 되겠다 싶어 마지막으로 서당 근처로 옮겼더니 이번에는 글 읽는 흉내만 냈다는 이야기는 요즘 부모들에게도 여전한 바이블이다.
우리에게 당연한 역사적 사실처럼 각인된 맹모의 '삼천지교'는 '열녀전'에 처음으로 나오는 이야기다.
그런데 최근 '열녀전'을 완역한 이숙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가 말한 바로는 '맹모삼천지교'는 실제로는 시대의 요청에 맞게 저자가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 교수는 "맹자와 관련된 어떤 기록에서도 그 모친의 교육열을 증명해줄 만한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면서 "다만 '맹자'에는 그가 어머니의 상례를 아버지보다 더 크게 치른 것에 대한 사람들의 질문을 받고 그것을 해명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맹모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으로는 남아 있지 않지만, 구전으로 전해오면서 저자가 이를 각색했을 가능성은 있다"면서 "하지만 맹모의 사례처럼 '열녀전' 대부분 이야기는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서 키워드 하나를 뽑아내고 거기에 상상력을 불어넣어 그럴 듯한 이야기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 열녀전에 나오는 이야기의 메시지 속에는 저자 유향(기원전 77∼기원전 6)이 인식하는 시대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열녀전'에서 창조한 맹모의 교육열은 과거(科擧)를 통한 중국의 관료제 국가체제에 조응하는 이데올로기로 활용됐다.
이 교수가 펴낸 '열녀전'은 사부총간본(四部叢刊本)과 '열녀전보주' 8권을 저본으로 삼았고, '속열녀전'을 포함해 '고열녀전' 8권을 완역한 것이다. '열녀전' 완역본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교수의 저작은 전공자가 직접 번역한 것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열녀전'의 '열녀(列女)'는 '많은 여성'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정절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그 '열녀(烈女)'와는 뜻이 다르다.
물론 많은 여성, 열녀(列女) 중에는 열녀(烈女)도 있지만 유향이 생각한 여성은 다양한 조건에서 다양한 형태의 삶을 산 여성들이지 정절이나 순결을 필생의 의무처럼 여긴 그런 존재들은 아니었다.
이 교수는 "열녀전은 모두 8권 124편으로 구성됐는데, 굉장히 다양한 유형의 여성을 소개하고 있다"면서 "오늘날 여자들의 유형보다 훨씬 폭이 넓다"고 소개했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는 여성이 미모와 날씬함 등의 기준으로 대상화되고 있지만 열녀전에 나오는 여성들은 적극적이고 당당하며 남자들을 막후에서 키우는 그런 존재였다. 여성들의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심지어 '나쁜 여자'들도 등장한다"고 부연했다.
장대한 스케일로 펼쳐지는 여성적 사유와 삶을 담은 '열녀전'은 그래서 오늘날 남녀관계의 재구성을 요청하는 텍스트로 손색이 없다고 이 교수는 주장했다.
글항아리가 펴낸 동양고전 시리즈 8번째 책이다. 712쪽. 2만9천원.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6/24 15:53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