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만 기자]
에너지 공기업인 한국석유공사의 올 상반기 순손실 규모가 1조 2,000억원에 달하고 정부가 출자한 10조원도 바닥을 드러내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MB정부 당시 외형적 성과를 내기 위해 추진된 석유공사의 대형화 시기(‘08~’12년)에 이루어진 해외자원개발사업의 잇단 실패로 부채가 급증하자 자구노력을 기울였지만, 올해 경영환경이 급격히 악화하면서 자체 개선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내몰린 것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김성환 의원(서울 노원병)은 20일 한국석유공사 등 에너지공기업을 대상으로 한 국정감사에서 MB정부때 시작된 자원개발의 후유증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문제를 제기하며, 에너지 공기업들이 제출한 해외자원개발사업 실적을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 올 6월 기준 석유공사를 비롯한 에너지공기업들의 해외사업 누적손실액이 20조원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2008년 이후 무리하게 추진된 해외자원개발사업은 그동안 국정조사, 감사원 감사, 언론보도 등을 통하며 추진과정의 문제점과 이로 인한 천문학적인 손실 규모에 대해 알려진 바 있다. 김성환 의원은 “해외자원개발사업의 공기업의 손실액 규모는 박근혜 정부 시절의 감사원 감사결과 확인된 3.4조원의 확정손실액을 시작으로 ‘18년 13.7조원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더니, 올해 드디어 20조원을 넘어섰다”며, “이로 인한 부담은 우리 국민들이 고스란히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성환 의원은 석유‧가스‧광물‧석탄공사 및 한전(자회사 포함)으로부터 제출받은 해외투자사업실적(’08~현재)을 분석한 결과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석유공사 8조 4,316억원(캐나다 하베스트 외 29개 사업) △가스공사 8조 6,714억원(호주GLNG외 20개 사업) △광물공사 2조 4,307억원(멕시코 볼레오 외 11개 사업) △ 한전 및 자회사 5,162억원(호주 바이롱광산 등) 등에서 대규모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규모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김성환 의원이 공개한 석유공사의 「2020년 상반기 연결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당기순익은 –1조 1,826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리한 해외사업으로 인한 손실을 줄이기 위해 고강도 구조조정을 시작한 지난 2015년 이후 최대 규모의 손실이다. 자본총계는 -5,566억원으로 자본잠식 상태로 돌아섰다.
특히 대규모 해외사업 투자를 위해 과도하게 차입을 늘린 탓에 매년 수천억원대의 이자비용도 계속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김성환 의원은 “석유공사가 지난해 벌어들인 돈은 5,714억원인데 이자비용만 지난해 4,745억원에 달했다”며. “한 해 영업이익의 80% 이상을 빚 갚는 데 써야 할 처지”라고 지적했다.
석유공사의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도 크게 개선되기 어려워 보인다. 지난 9월 기획재정부가 제출한 「‘20~’24 공공기관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에 따르면, 석유공사의 부채규모는 20조원 수준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됐다. 김성환 의원은 “지난해 3월 석유공사가 비상경영계획을 발표하며 고강도 구조조정을 추진했지만, 결과는 자본잠식으로 돌아왔다”며, “석유공사가 현 상황의 엄중함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김성환 의원실에서 입수한 석유공사 내부 경영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석유공사는 세계 석유·가스수요가 2040년까지 현재 수준으로 지속될 것이라 전망하에 해외사업을 이어나갈 계획인 바, 기후위기에 따른 시장전망이 매우 안이한 것으로 밝혀졌다. 참고로, 이 예상수요는 코로나19로 인한 석유시장의 충격 또한 반영되지 않은 전망치로 석유공사의 위기의식 부족을 알 수 있는 단적인 예이다. 반면 세계 최대 에너지기업인 BP는 ‘에너지전망 2020’ 보고서를 통해 중장기 석유수요를 전망하는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하였는데,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에서도 2030년부터 석유수요는 급격히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최근 메이저 글로벌 정유사들은 ‘탈석유, 친환경·종합에너지회사로 전환’을 위해 750억 달러(약 90조원)의 석유자산 매각을 추진하는 한편, 저탄소·재생에너지에 투자 중이다.
한편 김성환 의원은 MB정부 당시 총리실 주관으로 18차례 운영되었던 ‘에너지자원외교지원협의회’ 회의록과 석유공사 자체감사처분요구서 등의 일부 내용을 공개하며, 당시 해외자원개발사업이 범정부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점을 지적했다. 김성환 의원은 “이미 알려진 대로 2008년 이후 추진된 해외자원개발사업은 당시 정부가 공기업 등을 앞세워 이른바 VIP 치적쌓기와 정권 홍보를 위해 무리하게 추진하였고, 석유공사를 비롯한 공기업들이 이에 호응하여 제대로 된 검토 없이 3일 만에 캐나다 하베스트 인수를 결정하는 등 졸속으로 진행했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끝으로 김성환 의원은 “해외자원개발 후유증으로 10년 연속 적자, 누적 12.2조원의 손실을 기록한 석유공사가 결국 자본잠식상태에 빠진 이상, 다른 기관과 통·폐합 등 전면적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며,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당시 관계자들은 현재도 아무런 책임을 지고 있지 않지만, 우리 당과 정부는 어떻게든 수습할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아울러 김의원은 “이른바 ‘MB의 비용’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